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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s and Muse

쵸비츠, 치이와 카지모도

위고는, 노틀담의 사원에서 아낭케(ANATKH, 숙명)라는 단어를 보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런 낱말을 쓸 정도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처절해야 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하고. 그리고, 그 주인공은 카지모도였다. 보기흉한 꼽추에 얼굴은 일그러진 사나이. 겉모습은 그로테스크하지만 내면은 섬세한 현재의 사나이의 모델이 되기도 한, 이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다.

그리고 쵸비츠. 치이는 카지모도와는 정반대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누구라도 호감을 가질만한 귀여운 외모, 그리고 하얀 종이 같은 순진함. 왜 이 정반대의 조건에 처해있는 이 두 캐릭터가 이야기의 소재인가? 그것은,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캐릭터지만, 한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 관한 문제이다. 카지모도는 끝내 몽코퐁의 지하무덤에서 에스메랄다의 주검을 안을 수 밖에 없었고, 치이는 존재 그 자체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카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사랑했다. 하지만, 에스메랄다는 카지모도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카지모도는 보기 흉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더군다나 꼽추였다. 에스메랄다는 자신을 한낱 도구로 이용한 페뷔스에게 끝까지 마음을 주었다. 죽음의 문 앞에서도.. 카지모도는 교수대로 향하는 에스메랄다를 구하는 용기를 발휘하고, 오해로 인한 것이었지만, 에스메랄다를 동정한 거리의 불한당의 사원 침입에 맞섰다.

에스메랄다는 이런 카지모도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카지모도는 깨진 예쁜 꽃병과, 비록 볼폼은 없지만 물이 가득 담긴 질그릇에 꽃을 담아 에스메랄다에게 건네주었지만, 에스메랄다는 깨진 꽃병에 있는, 시든 꽃을 선택했다.

쵸비츠에서의 퍼스컴이라는 설정은, 그게 실제로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카지모도의 외모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랑의 걸림돌 역할, 그것이 퍼스컴이라는 설정의 존재이유이다. 카지모도의 외모가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얻지못한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면, 치이가 퍼스컴이라는 조건은 사람과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치이의 기억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게 없었던 일이 되진 않아!'

히데키의 이 말은, 쵸비츠의 핵심이 될 것이다.

클램프가 통찰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교묘한 연출기법으로 그 답을 피해가는 방법을 써오기는 했지만, 이 부분은 나름대로의 대답을 노출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답은 무엇인가? 바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쵸비츠는 좋은 작품일까? 그렇지 않다.

에스메랄다는 카지모도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에스메랄다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가 에스메랄다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꼽추인 카지모도, 외모가 형편없다면 돈이라도 많은가? 그렇지도 않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신분은? 사랑이란 낱말은, 이제 이런 조건을 감추는 가면에 불과하다! 사랑처럼 흔하게 쓰이는 말이 없지만, 이 낱말처럼 그 뜻을 모르고 쓰는 말이 있을까.

그렇다면 치이는? 카지모도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가 치이에게는 없었다. 이것에 비한다면 오히려 퍼스컴이라는 제약조건은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렇지 않은가? 카지모도와 치이, 모두 사랑을 이루는데 극복해야 한다는 조건은 같았지만, 에스메랄다와 히데키는 그 조건이 달랐다. 무엇하나 볼게 없는 카지모도의 구애를 거부한 에스메랄다와, 인간과 거의 비슷한, 어쩌면 더 인간같을지도 모르는 퍼스컴의 구애를 받은 히데키. 만약, 내가 이런 입장에 처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를 선택했는데!

이것이 클램프의 한계이다. 클램프가 진짜 본질에 접근하고 싶었다면, 카지모도의 슬픔을 생각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클램프의 작품으로 볼때, 그런 작품을 다룰지는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왜 쵸비츠를 보는가? 그것은 디즈니의 작품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유와 같다. 현실을 잊고 싶거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글을 쓴 사람에게는..




From Animate, Hitel, 20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