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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s and Muse

오혜성, 당신에게 필요한 것

미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집필했을 때, 미첼 스스로도, 남부의 시각에서 쓴, 지극히 통속적인 역사 소설이 큰 반향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서, 이 소설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며, 한 때 성서 다음으로 많은 출판 부수를 자랑하기도 했다. 또, 이 소설은 빅터 플레밍의 감독 아래 영화로 만들어져 그 해의 아카데미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패전한 남부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 강인한 여성의 이야기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 작품 역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이미 흘러버린 80년대의 통속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작품이 쓰여질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엄지에 대한 혜성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그 때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흥미를 끄는 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지금까지 널리 읽혀지는 이유와 동일하며, 이제 다른 해석을 붙여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리메이크란 개념이 지배한다. 그것은 과거의 가치가 다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그만큼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한 것이다. 흔히, 시간을 볼 때 자신은 강둑에 앉아있는 것으로, 그리고 시간은 흐르는 강물로 비유하지만, 이것은 잘못되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며, 변하는 것은 강둑에 앉아있는 자신이다. 마찬가지로, 오래된 이 작품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변했기 때문이며, 또 세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에서 마지막 독백, 결국 변한 것은 자신이었다는 말, 인상깊게 남았던 이유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주는 의미 또한 변할 수 밖에 없다.

무엇이 변했는가?

그것은 사랑이다. 이제는, 그에게 묻고자 한다. 과연 그것이 사랑인가? 사랑은 홀로 설 수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에게 또 묻는다. 그녀와 같이 지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대는 행복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그녀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의 한구석이 허전하기 때문이며, 그것을 그녀가 채워주리가 믿고 있겠지만, 결코 그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을 받을 수 있겠지만, 주는 사랑을 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정신병원에서, 미쳐서 매일같이 오열하는 두 환자가 있었다. 의사가 그 방을 둘러보고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 둘은 대체 왜 저렇게 슬퍼하는 것입니까?'

간호사가 대답한다.

'저 두 사람은 한 여자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한 남자는 그녀와 결혼한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선택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혜성은, 결코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은, 사실 엄지에 대한 집착이다. 혼자 서는 법을 배울 수 없다면, 혜성의 인생은 저 두 방을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다. 과연 그런 사랑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불행하게도, 이런 모습이 사랑으로 오인되고 있다. 주위를 보라. 온갖 넌센스가 넘쳐난다. 여자는 이런 집착의 정도로 남자의 사랑을 재어보고, 남자는 결혼 뒤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에 외도하거나 미쳐버린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사랑일 뿐이며 결국 또 다른 사랑을 찾아 같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 서로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사랑을 줄 수 없는, 그저 받기만을 원하는 거지인 것이다.

이 작품은 이제 더 이상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랑 때문에 불행해지고 있다. 이제 이런 것은 그만 끝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존 레논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지옥도 없을 겁니다.
국가가 없다면, 사람들이 죽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겁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이것은 뛰어난 통찰이다. 그리고, 오혜성, 그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없었다면, 그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혜성,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엄지가 아니라 홀로 서는 법이었다.


Written by Celdee, 2003.10.5, from Animate, Hit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