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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s and Muse

Brian Crain, A Simple Life

뉴 에이지 계열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편안하다. 뉴 에이지라는 장르 자체가 서정적이면서도, 자신들의 메세지를 공격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락의 경우, 대단히 듣기가 힘들다. 락을 깊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락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공감을 하면서도 즐겨 듣는 편은 아니다. 락이 반항, 저항이라는 키워드를 그야말로 폭발하듯이 내뱉는 느낌이라면, 이쪽은 바깥으로 뭔가를 폭발하기보다 조용히 내면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뉴 에이지 계열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은데, 웃긴 것은, 대부분 개신교에서 비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언컨데, 이들이야말로 종교가 무엇인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종교를 믿는 것은 결코 사후에 천국에 가기 위한 입장권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다.

편견없이 들어보라. 글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고 남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경험해보라는 말이다. 뉴 에이지가 라엘리안과 같은 괴상한 종교와 연관되어 있다고? 글쎄,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런 사람이 분명히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종교라는 것의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최소한, 내가 경험한 바로는, 뉴 에이지라는 장르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고찰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장르와 다르게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바로 내면에 있다. 인간은, 내면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신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실패했다. 신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그런 여행에 지친 사람은,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장르라는 단어 대신, 최소한 내가 느낀, 이 계열의 예술가들이 하는 말은 이것이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이런 쪽의 예술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뉴 에이지 작품이라 부르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왜 이름 붙여져야 하는가?


죽은 경전, 성경 따위에 의지하여 진리를 찾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경전이나 성경이 진리의 말을 그대로 적은 것이라 해도, 그것이 글로 남는 순간 그것은 생명을 잃어버리며, 주석에 주석을 다는 그런 짓으로는 절대로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 글자가 아니라, 순수한 눈으로 관찰하라. 아마도, 더 이상 기존의 종교라는 비지니스에 의지하지 않으려는 경향 때문에 뉴 에이지라고 불리는 것 같긴 하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필요한 것은 종교라는 위선이 아니다.


아무튼, 뉴 에이지라는 것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사탄이니, 뭐 이런 개소리와 가까운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여기에 편승하여 돈을 벌려는 사이비는 봤어도(그저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만 하고 내면과의 소통이란 주제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어처구니 없는 연관성은 전혀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비난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 당신이 솔직하게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고, 이야기를 이해한 뒤에 비난하라. 그때 비난하는게 옳지 않겠는가?


음, Brian Crain의 A Simple Life가 다시 물건이 돌고 있으니, 구하지 못한 사람은 구해보도록. Butterfly Waltz가 너무나 유명할텐데, 그것 외에도 12곡 모두 주옥같은 명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