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apyrus/Dizzy Report

윈도우가 저물어갈 때

영광스러웠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시대도 이제는 끝이 보이는 듯 하다. 윈도우의 주 무대는 누가 뭐라해도 단연 데스크톱이다. 윈도우 서버는 애플과 달리 특정 서버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위상을 확보하고 있지만, 데스크톱 운영체제 점유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제국의 몰락은 언제나 뜻하지 않은 작은 흔들림에서 시작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있어서 그 작은 균열은 모바일 플랫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모바일 시장에서 윈도우 플랫폼의 확산이 매우 더딘 사이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응용 프로그램, 즉 게임에서의 DirectX의 위상이 OpenGL에게 빠르게 침식당했다. 게임 개발사들 사이에서 더 이상 윈도우가 게임 플랫폼으로서 과거만큼 확고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데, 오늘날의 컴퓨팅 환경은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사용자의 작업이 더 이상 운영체제에 종속되지 않는다. 웹서핑, 메일, 동영상과 오디오 재생은 어느 운영체제든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게임을 빼고서 말이다. 게임은 윈도우를 PC와 다른 모든 플랫폼에 연결해주는 포스트 PC 시대의,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남은 마지막 산소호흡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모바일 플랫폼에서 윈도우폰은 죽을 쑤고 있는 형편이고, 그에 따라 게임 개발사들은 멀티플랫폼에 용이한 OpenGL을 주된 옵션으로 장착한지 오래다. 하나가 바뀌려면 영원을 기다려야 했던 과거와 달리, OpenGL은 3.0 이후로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 DirectX에 성능으로나 렌더링 품질로나 밀리지 않는다. 더구나 모바일 플랫폼에서 OpenGL ES의 위상은 확고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윈도우 8은 모바일과 데스크탑을 통합하는 윈도우 스토어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러나, 새로운 윈도우 스토어 정책에 많은 개발사들이 반감을 표하고 있다. 특히 밸브의 스팀을 윈도우 스토어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게이머와 게임 개발사들 사이에서 스팀이 가지고 있는 위상을 고려해볼 때 상당한 도박이 될 수 있다. 즉, 언제부터인가 게이머들과 게임 개발사들이 윈도우와 DirectX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으며, 윈도우의 몰락에 필요한 것은 단 한 방의 은총탄이다.

 

윈도우의 데스크탑 운영체제로서의 경쟁력은 이제 더 이상 압도적인 것이 아니다. 남은 것은 게임이며, 모바일 플랫폼에서 윈도우폰의 지지부진함을 엑박이 그만큼 상쇄해주고 있지만 스팀의 반란 뒤에는 수많은 게이머가 있고, 개발사들은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윈도우폰이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모바일 플랫폼 시장에서 DirectX가 설 자리가 없어지고, 게임마저 윈도우를 이탈하기 시작한다면 윈도우의 생명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에게 긍정적인 것 한가지는 윈도우 스토어든 앱 스토어든 플랫폼 통합 마켓이 필수적인 흐름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모든 소프트웨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수를 받고 로열티를 내야하는 것은 아니다. 태생부터 PC는 우아한 소프트웨어와 쓰레기 소프트웨어들이 공존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쓰레기 소프트웨어들 역시 PC 사용자들을 늘리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윈도우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사용자들은 유닉스의 일관성 있는 메타포를 사랑하거나, 애플의 우아하지만 독선적인 UI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도스와 윈도우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온갖 쓰레기 소프트웨어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언제나 혁신보다는 누더기 바느질로 살림을 꾸려왔으며, 엉망진창 사고를 일으키고 수습하는데 익숙하다. 데스크탑 플랫폼에서 즉시 윈도우 수준으로 운영 가능한 대체제는 없다는 점도 아직 마이크로소프트가 유리한 점이다. 맥이 있다고 말한다면, 맥은 PC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덧붙여 논란이 된 윈도우 스토어의 폐쇄적인 정책은 애플의 폐쇄성의 새발의 피도 안된다는 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