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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yrus/Dizzy Report

알파고: 새로운 두려움과 미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두번째 대국이 끝났다. 이제 어렴풋이 전체 게임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 듯 하다. 일부 사람들은 드디어 기계에 의한 지배가 현실이 되었다고 비탄에 젖었을지도 모르겠다. 알파고의 완승은 대중적인 관점에서 매우 혁명적인 사건이었으며, 조금 비약을 하자면 포스트 정보화 시대, 인류 제4의 혁명은 모바일이 아니라 인공 지능이었다는 메세지를 던진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관점에서는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하루였을 뿐이며, 이 사건 하나에 과도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인공 지능이란 분야는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공상 과학에서나 나오는 환상이었을 뿐, 그 실체는 80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전혀 무용지물인, 똥파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인공 지능 분야는 그야말로 파리 날리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무어의 법칙이 한계를 맞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병렬 처리와 네트워크가 바로 그것이다. 인공 지능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었던 것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인간의 창의성(보통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이었는데, 이것을 근사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어마어마한 연산량을 네트워크로 연결된 병렬 기계들로 처리하며, 지치지 않고 끝없이 반복 작업을 하는 컴퓨터의 유일한 장점을 발휘하여 수많은 경우의 수를 스스로 학습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사실, 우리가 어떤 것을 학습하는 것은 기계 학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계는 주어진 초기 변수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지만, 지치지 않고 끝없이 학습할 수 있을 뿐이다. 자유 의지에 의해 스스로 변수를 인식하고 문제를 확장해 나가는 인간의 능력과 근본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앞으로도, 아직도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하다고 믿어지는 이 능력에는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은 오늘도 무심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80년대의 인공 지능이란 미지의 세계였다. 인공 지능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했으며, 그 실체가 알려진 다음에는 우스개 소리가 되었고, 미지의 물음표는 유전 공학이 넘겨 받았다. 사라 코너는 1995년에 스카이넷이 깨어나 핵전쟁으로 인류를 멸망시킬거라고 했지만, 실제로 1995년에 가장 많이 팔린 CPU는 고작 펜티엄이었으며, 독립적으로 구동 가능한 인공 지능은 과장을 좀 보태면 여전히 똥파리 수준이었을 뿐이다. 현실적인 인공 지능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동안 발전한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인공 지능은 다시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기계 학습이 인공 지능의 한계를 다시 한번 미지의 세계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당장 어떤 새로운 두려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계 학습에 의한 인공 지능은 머지 않아 우리 생활에 곳곳에 파고 들 것이며, 그 실체와 한계를 알게 되면 이 인공 지능을 두려움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란 점이다. 이 당연함 위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모습이 일상화 되었을 때, 사람들의 생활은 다시 한번 달라질 것이다.


물론, 그런 날이 오더라도 프로그래머는 이 모든 것을 직업적인 찌들림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점도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