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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야구, 삼미 슈퍼스타즈를 추억하며 : 거꾸로 쓰는 프로야구史 <4>

거꾸로 쓰는 프로야구사 <4>

컬트야구단 삼미의 마지막 카드로 현해탄을 날아와
슈퍼스타즈와 꼴찌다툼을 벌이던 로떼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로떼팬들의 염장을 질러버린 사나이가 있었다.

막가파식 등판으로 프로야구에 신선한(신선했나요...)충격을 던지며
불붙은 프로야구 열기에 신나통을 던져버린 사나이가 있었으니,
83년의 진정한 히어로, 30승 투수, 그 이름 장.명.부.였다.

평범한 투수들이 족히 3년은 걸쳐 던질 공을, 한 시즌에 뿌려댔던
600만엔의 사나이, 그 이름 철완너구리 장.명.부

하지만 3년걸릴 노쇠현상을 한시즌만에 이룬탓인지
이듬해인 84년 시즌엔 평범한 투수로 전락해버리고.....

이제 막오른 너구리의 전성시대는 바로 막내리며
辛라면의 독주가 펼쳐진다.(행라면이 아녜요~~)

82년과 83년 한국시리즈에서 바부역할과 구경꾼 역을 맡아야했던
라이온스는 이러다 '물먹는 사자'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84년을 라이온스의 해로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드디어 84년 가을, 프로야구사상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가 펼쳐진다.
'황금의 팔' 최동원은 7경기 가운데 5경기를 등판하여 4승을 따내며
80년대의 팀, 라이온스를 생까버리며, 80년대의 바부팀으로 만들고,

한동안 프로야구계를 말아먹을 것으로 예상되던 절대강자 라이온스는
휭~한 가슴을 부여잡고 '내년부터 밥말아먹자'고 굳게굳게 다짐을 한다

83년에 잠시 외도를 했던 슈퍼스타즈는 이듬해부터 제정신을 차리고
이후 5년간 기복없이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꾸준히 꼴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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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사 ┃
┃ ┃
┃ - 제4편 배신의 계절에 찾아온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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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3승을 거두며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던 장명부는
세번째 시즌을 맞아, 다시 비범한 투수(시즌최다패전)로 변신을 하며,
인천야구의 희망에서, 슈퍼스타즈의 미운털로 전락하고 있었다.

30승을 달성하고도 프론트로부터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못한 너구리는
성의없는 투구로 일관하면서, 원래부터도 그랬지만
자꾸만 타자들을 향해서 공을 던지고 싶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슈퍼스타즈의 미운털에서 프로야구의 미운털이 되가고 있었다.

80년대의 강자, 라이온스는 이만수와 장효조를 앞세워
84년에 이어 타격타이틀을 완전히 밥말아먹고 있었다.
조금 다른것은 타이거즈의 김성한이 타격부문에 자꾸 오리궁둥이를
들이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썩어도 준치'콤비 중 백인천은 삼미의 유니폼을 벗어던지게 된다.
슈퍼스타즈를 맡아서 탈꼴찌할 자신이 없었나보다.
세상엔 인간의 힘으로 바꿀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된 것이다.

당시 슈퍼스타즈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우고 있었으니,
백인천씨는 상황판단을 빠르게 한 셈이었다.

최악이라는 단어는 사전에만 존재할 뿐,
더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슈퍼스타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원년에 세웠던 16연패라는 기록을 깰수 있는 건,
역시 자신들뿐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증명해 보이며,
조만간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패기록을 18연패로 가볍게 늘여놓았다.

그리고 OB곰팅이들에게 16:0의 최다점수차 완봉패를 기록하며
1게임 최다피안타 기록등, 원년에 세웠던 기록을 하나씩
갈아엎어가고 있었다.

슈퍼스타즈 이후 인천 야구팬들은 왠만한 연패나 대패에는
초연한 자세를 보여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부 팬들은 자학적 성향마저 나타나게 되어,
'자알한다~ , '이겨라 삼성~, '힘내라 해태~ 라는
자조적인 구호만이 인천구장에 메아리쳤다.

슈퍼스타즈가 꼴찌를 면하는 길은 한가지 뿐인듯 했다.
그건 포항 아톰즈축구단을 프로야구에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충격적인 18연패를 당하면서 슈퍼스타들은 점점 아래로 추락했다.
가난한 집에 효자난다고, 삼미의 유일한 슈퍼스타 정구선만이
3년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었다.

18연패의 위업을 달성한지 얼마되지 않아,
라면과 청바지를 주종목으로 하는 청보라는
내 평생 듣도보도 못한 기업에서
슈퍼스타즈를 인수하게 된다.

슈퍼스타즈와의 3년이 좀 넘는 기간동안 인천야구팬들에게는
'탈꼴찌'라는 졸라 소박한 꿈만이 허락되었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그리 많았길래,
이 좋은 개명천지에 꼴찌로 살아야하는지.

핀토스의 창단은 인천야구에 일대변혁을 가져올 것인가?

인천야구의 비상을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 지켜보려던
소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비웃기라도 하듯
삼성은 신생팀 청보의 앞길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아주었다.

청보전에서 허규옥, 장효조, 박승호의 1이닝 3홈런이 나왔던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인천소년팬들을 학교로 돌려보낸 사건이었다.
다혈질 소년들은 눈에 흙을 뿌리기도 하였다.

꿈만 가득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보아야 할 나이에,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세상엔 라이온스팬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라며 자포자기 인생관을 형성하고 말았던 것이다.

프로야구의 바닥판 슈퍼스타즈에 이어,
핀토스는 하위팀의 등불,
상위팀들의 우황청심환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슈퍼핀토스의 팬으로 남아있는 일은
소년으로선 가당하기 힘든 인내심과 자제력을 요구했다.

꼴찌라는 멍에를 지고 세상을 살기엔
소년들에겐 아직 9만리같은 세월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포기할 순 없었다.

희망은 인내하는 가슴 속에서 꽃핀다고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미련곰팅이 같은 짓이라는 걸
시니컬보이의 직관으로 서서히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인천야구팬과 원년 슈퍼스타즈의 어린이회원으로서의 의리와
더이상 슈퍼핀토스의 팬으로 남아있다가는
염장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이성적 판단의 기로에 서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85년의 여름, 해태에 다니시던 이모부께서,
타이거즈 어린이회원에 가입을 시켜주신 것이다.
HAITAI TIGERS, 하이타이 타이거즈라........

불뿜는 광속구, 닥터K 이상윤과
김일권, 김성한, 김봉연, 김준환, 김종모의
다이너마이트 킴스클럽 타이거즈!

82년을 우리들 가슴에 영원히 수놓았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히어로 선동렬마저
하이타이 타이거즈에 입단계약을 맺은 때였다.

어차피 난 슈퍼스타즈의 팬이었지, 핀토스의 팬은 아니지 않은가?
'슈퍼핀토스는 버림받아 마땅했던거야....
그래 다음생까지 기다릴것없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거야.

숨쉬는 공기가 이렇게 신선할 수가 없었으며
어제와는 다른 태양이 뜬 것 같았다.
덩달아 공부도 잘되는 것 같았다.

....하늘은 저토록 파랗고, 세상은 참 아름다웠었던거야.

........그렇게 배신의 계절은 찾아왔으며,
인천구장에서는 라이온스와 타이거즈의 화끈한 방망이 소리만이
무심히 전해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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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사실 개인적으로는 유두열의 3점홈런보다
김유동선수의 만루홈런이 더욱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 4년전에, 93년도인가 94년도에 테레비에서 김유동씨가
인간시대같은 프로에 나온것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시리즈 원년MVP 였던 김유동씨가 조그만 *갈비집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야구연습을 하던 모습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옛날에 날리던 야구선수였단다.'
라는 말을 하던 김유동 선수의 얼굴에서
평범한 한 아버지의 소박한 웃음을 보며
나도 저런 아들을 하나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신문에서 김유동씨가 인천에서 리틀야구팀을 창단하고
야구 꿈나무 육성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유동씨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거꾸로보는 프로야구사라고 제목도 거창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엔 짧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주저리주저리 길어지네요
읽어주시는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