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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야구, 삼미 슈퍼스타즈를 추억하며 : 거꾸로 쓰는 프로야구史 <2>

거꾸로 쓰는 프로야구사 <2>

⊙ 1편 줄거리(from jonedoe하시면, 1편을 보실수 있습니다.)

제 1편 : 화려한 프로야구의 뒷골목, 암울한 인천

박철순의 역투로 우승을 감격을 맛본 오비소년팬들은
알록달록 예쁜 야구모자, 앙증맞은 빨간 야구잠바를 입고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그때..........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3할은 쳐낼듯이 투수들을 우롱하던
백인천에 열광하며 '게브랄티!!'를 외치던 청룡소년팬들이
야구라는 스포츠의 묘미를 한껏 느끼던 그때,

*참고: '청룡' 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하지 않은 야구팀이었다
어릴땐 라이온스, 타이거즈가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청룡'이 너무 이쁜 이름인 것 같다.

원년 최초의 바부 '이선희'를 탄생시켰지만,
역시 80년대의 팀으로 손색이 없는 '라이온스' 소년팬들이
'우리에겐 우승뿐!!'을 외치던 바로 그때,

(*참고
이선희: 아마최고의 좌완투수에서 원년최초의 바부로 전락한
비운의 명투수. 프로야구사상 최고의 드라마틱'홈런'이었던
김유동의 그랜드슬램을 헌납한 비운의 주인공.
김유동은 그후 갈비집인가 물텀벙이집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이선희는 어떻게 되었는지...제이~ 스치는 바람에~)

* Percival 주 : 이선희씨는 프로 투수 코치로 활동중이죠.
이길때보다 질때가 많다고 부산의 소년야구팬들이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운명의 장난으로 6번에 1번을 간신히 이기는 컬트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회원이 되었던 아무개는
원더우먼 빤쓰를 연상시키는 야구잠바를 장농속에 처박아버린채
억센 팔자를 탓하며, 염세적인 소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82년, 삼미는 그후 17년이 걸려도 넘어서지 못한 1할대 승률이라는
어이없는 기록으로 인천소년팬들에게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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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프로야구사
제 2편 미완의 혁명.......아아 83년,
꼴찌가 드디어 프로야구 역사를 정복하다.

'승리의 비결은 무지일뿐이다'

어린나이에 인생의 쓴맛을 알아야만 했던 인천소년야구팬들은
82년이후, 인생에 대해 씨니컬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야구를 사랑하되 절때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강요받았던 소년들이었지만 모든 희망을 다 버린 것은 아니었다.
인천소년들은 소박한 행복이라는 말을 전신으로 느끼고 있었다.

'탈꼴찌'...... 더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더 바란다는 것은 프로야구에 대한 모독이었다.

'지더라도 멋진 경기를 펼치라?'
이런 호강에 받친 소리는 삼성팬에게나 어울렸다.
우리는 도깨비팀, 컬트야구단, 슈퍼스타즈의 팬이었다.

우린, 자신에게 어울리는 꿈을 꾸어야 했다.
'상대방 귀를 물어뜯더라도 이겨만 다오.........'

하지만 승부에는 독야청청 초연했던 슈퍼스타즈의 플레이는
팬들의 발걸음을 가정으로, 직장으로 학교로 돌리게 했던 것이었다

83년, 원치않아도 어김없이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고
인천소년들은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준비된 꼴찌 삼미의 처절한 성적을 담담히 기다렸다.

벌써 현실을 현실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소년들이었다
'어쨔거나 작년보다 못하겠는가.......
그래도 걱정이 앞섰다.
버뜨 그러나..........
기적은 원래 세상의 가장 버려진 곳에서 발생하는 법.......
가장 아름다운 꽃은 쓰레기더미속에서 핀다고 하지않았던가.....

83년, MBC와의 시범경기에서 정구선-김진우-이영구가 한국최초의
3연속타자 홈런을 기록했던 것이다.
이런 비슷한 기록을 작년에 많이 기록했지만 그건 삼미 투수진이
기록했던 것이었다.

이런 기록은 삼성팀에 의해 인천구장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인데,
믿을수없게도 이날의 주인공은 삼미였던 것이다.
청룡팬들은 경악했지만, 가장 경악한것은 역시 인천팬들이었다.

'쟤들 드디어 돌았나봐..........

그리고..........
일반적인 물리법칙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초인이 홀연히 등장했다.

그 이름하여... 철완너구리. 장.명.부.

1983년.........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가끔 생기곤 한다.

⊙ 철완너구리 장.명.부.

1983년 벽두에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국내 최초로 재일동포선수 수입이 삼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프로야구와의 격차는 방망이 거꾸로 잡고도 3할을 칠 백인천에
의해 여실히 드러났으며, 더이상 잃을 것 없는 삼미는 여기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초인'장명부는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컬트야구단,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어린 본인이 장명부의 볼배합까지 파악할 수 있는 눈은 없었지만.
여느 투수들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투구스타일였다고 기억한다.
압도하기 보다는 농락하는 투구패턴에 가끔씩 섞어 던지는 빈볼...

아직 빈볼의 역할이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던 국내팬들에게
타자의 몸쪽, 머리쪽을 겨냥하는 빈볼과
넘어진 타자를 향해 비웃듯 던지던 특유의 실실쪼개는 입가의 미소

아아......그는 진정 '마인'이었다.

장명부는 위협투구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국내에서 메이저리그급
패싸움을 유도하여 국내프로야구에 액션스펙타클을 가미시켜준다.

'괴인' 장명부는 3주라는 짧은 기간에 8연속게임 완투승이라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달성한다.

등판간격 조정이나 선발 마무리 가릴것없이 마구잡이로 나서
슈퍼스타즈 경기의 70%이상을 등판을 했던 '초인' 장명부

전날 완투후 다음날 마무리로 나서는 그의 엽기적 투구행각에 대해

'정신력의 위대한 승리다'
'참을 수 없는 무지의 강인함이다'
'정신조차 초월한 히로뽕 기운이다' 라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아직까지 정설은 없다.
30승투수는 21세기 안에 다시 등장할 수 있겠지만,
장담컨데, 승률 4할대의 30승투수는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야구선수로 데뷔하기전엔
불가능할 것이다.

30승 41패...........아아 그는 진정한 '초인'이었다.

(*참고 : 30승투수
80년대 일상적인 용어였던 20승이 넘기힘든 벽이 되어버린 지금,
30승? 그건 올해1년 마운드에서 불살르고,
야구 인생 불꽃처럼 막내릴 각오로 던지면
이대진정도의 투수가 삼성타선정도 받쳐주면 할수있을지도....
하지만 그러다가 영영 밥숟가락 놓는 불상사가 생길수도 있다. )

또한 특출난 선수없이 장명부라는 초인이 가져다준 상승효과로
팀전력은 급상승했으며,
잠시 그들은 자신들이 도깨비야구단임을 망각하고
도깨비방망이라도 되는 듯이 기염을 토하며 맹타를 휘둘렀다.

결국 전기리그에서 1게임차로 해태에 뒤져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결국 운은 거기서 다했던 것일까..........
한국시리즈는 그후 10년간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이다......

83년이후, 제정신을 차린 삼미는 이후 청보와 태평양으로
삼단변신을 하며 '패'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싹 갈아엎어버린다.
그후 89년까진 인천연고팀은 모든 야구팬들의 염원,
성적의 마지노선을 든든히 지키는 최후의 파수꾼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게 되는데...............


 

  1. 무려 0.188! 한창 때 엘롯기 동맹의 롯데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불멸의 승률. 쉽게 말해 133 경기 체제에서라면 100패가 넘어간다는 소리. 야구장에 불이라도 지르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성적이다. 그리고, 정말로 인천 야구팬들은 야구장에 불 지른 적도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