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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의 '신의 손'과 '세기의 골', 그리고 태권축구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6월 17일에 아르헨티나와 다음 일전을 치르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스쿼드 구성은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화려한 면면들을 자랑하기에, 우리가 믿을 것은 마라도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의 '걷어차기'에 시달려서 '태권축구'라는 이름을 처음 만들어 냈던 사람도 마라도나였던 만큼, 우리와 직간접적으로라도 인연은 있는 듯 하다.




'신의 손(Hands of God)' 사건을 비롯한 우스개로 잘 알려져 있는 마라도나지만, 사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축구계의 스타이다. 유명한 '신의 손'은,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포클랜드 전쟁을 거치면서 축구로라도 억울한 심정을 풀어야겠다는 아르헨티나 국민의 심정을 보여준 것이다. 포클랜드를 둘러싼 긴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없지만, '신의 손'을 이야기하려면 빠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포클랜드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명확한 아르헨티나의 땅이었다. 그런데, 제국주의 시절 우여곡절 끝에 영국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겨난다.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 정권이 정권의 위기를 탈출하고자 숙원이었던 '포클랜드 탈환 전쟁'을 감행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포클랜드 전쟁의 아르헨티나의 패배로 막을 내렸고 아르헨티나는 자신의 땅이었던 포클랜드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무례하게 비교하자면, 일본이 막강한 해군력으로 독도를 무단 강점한 뒤, 우리가 전쟁에서도 패해서 영원히 독도를 잃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포클랜드 전쟁이 끝난 뒤 양국의 감정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좋지 않았던 양국 관계에,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에서의 오프사이드 논란, '짐승들' 사건, 여기에 전쟁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철천지 원수'란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드디어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8강전에서 모든 것을 걸고 격돌하는데,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양국 응원단의 패싸움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포클랜드 전쟁으로 잃어버린 조국의 자존심을 반드시 회복하라'라는 국민의 염원을 안고 경기에 임했다. '신의 손'은 좀 과하긴 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 잉글랜드 기자들이 집요하게 마라도나에게 '그 손은 당신 손이 확실하지 않은가'라며 핸들링 파울이 아니냐고 따진다. 이에 마라도나는, '그 손은 내 손이 아니다. 그 손은 '신의 손'이다'라고 대답한다. 아래 링크에 소개되어 있는 '축구문화사 아르헨티나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의 손이라는 말은, 단순한 핑계에 불과하지 않다. 기독교 문화에서 신은 공정함, 정의를 뜻한다. 이 수사에 의해 반칙은 응징의 의미를 갖게 된다. 또한 정의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아르헨티나에 있다는 뜻이 된다. 마라도나의 발언은 옳고 그름을 떠나 아르헨티나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었다. 잉글랜드인들이 마라도나를 그토록 증오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그의 말속에 숨은 의미가 타당하다고 하면, 영국은 악의 편이니 말이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단어인 '신의 손'은 이렇게 탄생했다.




여튼, '신의 손'으로 기선을 제압한 마라도나는, 이후 4분만에 '20세기 월드컵 최고의 골'이라 불리는, 단독 드리볼로 수비수 6명과 골키퍼까지 제친 골을 성공시킨다.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여세를 몰아 4강전에서 벨기에를 2 : 0으로 제압한 뒤, 결승전에서 서독을 3 : 2로 제압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신사적인 이미지의 펠레에 비해 언제나 언론의 스캔들 대상인 마라도나지만, 그는 펠레에 못지 않은 축구계의 불세출의 천재이다. 그의 망나니 같은 사생활을 문제 삼아 그를 깎아내리는 기자들도 있지만, 그는 적어도 그라운드에서는 축구의 신이었다.





이제 우리는 6월 17일,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와 일전을 겨룬다. 부디 양 팀 모두 훌륭한 경기를 펼쳐서, 풍성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특히, '태권축구'로 대변되는, 언제나 세계의 벽에 막혀 좌절했던 한국 축구가 훌륭한 경기를 펼처서, 마라도나로부터 '한국은 더 이상 태권축구를 하지 않는다'라는 멘트를 듣게 된다면, 그것 또한 역사의 한 장면이 될 것 같다. :)


* 덧글. 아르헨티나와 축구, 그들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 링크를 따라가보라. 딴지일보의 기사인데, 매우 잘 쓴 글이다 : http://www.ddanzi.com/ddanzi/section/club.php?slid=news&bno=29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