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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yrus/Digging in the Dirt

Digging in the Dirt 6, 인터넷과 자본주의

하형일 : UC 샌디에고 경제학과 졸업, 매킨토시 사용경력 10년째인 컬럼니스트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ssen)은 인터넷이 가져올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 Highway)의 보편화를 자본주의 효율성의 극대화로 표현했다. 인터넷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체제가 가장 완벽하게 운용될 수 있는 자유경쟁 체제의 사이버 스페이스로서, 그 가능성은 달나라 여행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우리의 눈앞에 다가왔다.

즉, 자원과 기술이 인류의 생상력을 좌우하기보다는 정보와 교육 수준이 경제력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가히 혁명적인 논리로 인터넷을 현실적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호에 필자는 네트워크 컴퓨터(NC : Network Computer)에 대해 기술적인 개요를 설명했었다. 많은 독자들이 이 황당무계한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언뜻 짐작이 가지 않지만, 적어도 인터넷을 구심점으로 돌아가는 현 PC 산업 전반에 NC 개념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음은 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초 오라클 사가 이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소수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PC의 몰락을 예고할 정도로 NC가 지니는 잠래력을 부각시켰으며, PC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도 머지않아 NC라는 새로운 매체가 PC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들이 말하는 미래가 과연 '언제'를 의미하는가에 있다. 현재 이 질문의 답은 수학적인 논리로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며, 무어의 법칙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해도 10년이라는 세월을 가시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오라클을 비롯한 진보 성향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앞을 다투며 NC가 지금 당장 이루어질 것처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여기서 오는 소득은 무엇인가?


어떤 이의 꿈

현재 NC 개념은 시장성 면에서 기존의 PC 개념과 동일한 위치에 놓여있다. PC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듯이, NC도 이 두 요소를 핵심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NC 체제와 비교해 '혁명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이유는, 바로 정보고속도로를 전제로 인간의 기본 생활 패턴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오라클 사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마치 인텔 사가 586 체제의 CPU를 판매하면서 986 CPU프로젝트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발표하는 것처럼, 또는 마이크로소프트 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두고 관망해 온 개념을 일반 사용자들에게 공개한 것처럼 말이다.

아직 미래로 가는 길은 첩첩산중에서 서너 고개를 넘은 상태다. 인터넷이 보편화되었다는 말은 인터넷을 사용해 보지 못한 사람들의 순진한 감탄에 불과하다. 모든 컴퓨터 사용자들이 586이나 파워PC 604 칩 이상의 CPU를 보유하고, 카이로나 코플랜드 운영체제를 능숙하게 운영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음에야 PC 체제가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떠도는 인터넷 시대의 소문은 펜티엄 수준으로 퍼져 있지만, 현실은 아직도 8086 시대에 놓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보고속도로 시대는 기본적으로 전화 통신 체제 위에 가설될 수 없다. 진정한 정보고속도로라면, 각 가정에 광섬유 케이블이 접속되어 있고, 하늘의 별만큼 인공위성이 춤을 추어야만 알 고어나 빌 게이츠가 주장하는 미래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라클이 그렇듯이, 누구나 이론은 제시할 수 있지 않은가?


NC의 조건

먼저 오라클 사가 제시하는 NC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먼저 점검해 보자.

첫째, NC 체제는 하드 드라이브를 거부한다. 현재 PC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하드 드라이브에 설치하는 체제를 취하고 있지만, NC는 플래시 카드라는 미래형 메모리가 하드 드라이브를 대치하게 된다. 마치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 한 편을 빌려 본 후 반납하는 대여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NC를 충분히 소화내 내기 위해서 플래시 카드는 적어도 40MB의 램 용량을 요구하는데, 현재 플래시 카드는 5백만 달러란 고가에 시판 예정이다. 저렴한 컴퓨터의 구축이란 취지에서 생긴 NC가 PC보다 비싸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둘째, NC는 윈도우나 매킨토시와 같이 보편화된 플랫폼을 취하지 않는다. 먼 장래에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사가 이 사업에 뛰어들기까지는 독잦거인 플랫폼을 취해야 하는데, 현재 일반 사용자들이 인식하는 플랫폼의 개념은 MS 사의 윈도우나 애플 사의 시스팀 7.5이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플랫폼이란 사용자들을 인터넷의 월드와이드웹에서 접속시켜 주는 브라우저 개념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결론이 된다. 그렇기에 비평가들은 NC를 '브라우저 보이(Browser Boy)'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브라우저 보이란 브라우징 기능밖에 없는 '실속없는 플랫폼'이란 소리다.

셋째, 28,800bps 모뎀의 한계를 똑바로 인식하자. 14,400bps와 28,800bps는 정확히 두 배의 속도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통신 베테랑들은 이 두 모뎀의 차이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데 의견을 같이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다수의 사용자들이 14,400bps 이하의 속도로 통신을 하며, 28,800bps 모뎀 사용자는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적을 좋은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인텔이 자랑하는 최강의 펜티엄 프로 CPU가 16비트 소프트웨어를 갖춘 기존 펜티엄보다 속도가 느리다. 즉, 하드웨어는 64비트의 초강력 CPU를 탄생시켰는데, 소프트웨어 시장은 386 시장에서 허우적대는 현실의 모순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28,800bps 모뎀은 텍스트와 간단한 그림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다는 뜻이지, 결코 동화상 애니메이션이나 음성 효과를 리얼타임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문제점을 현실적으로 풀이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정보고속도로를 광섬유 케이블 위에 개설하는 방법뿐이다. 따라서 이 기반 구조가 완성될 수 있는 시점이 10년 후가 된다고 계산하면, NC는 8년 후쯤에서나 거론되어야 할 개념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용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어야 할 요소는 플랫폼, 즉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안정성(Reliability)에 있다. 현실적으로 인터넷을 전화 통신상에 운영시킨다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매킨토시 시스템이 전자출판 분야의 기타 전문 분야에서 윈도우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인터페이스의 안정성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GUI 체제가 바로 매킨토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스팀 7.5는 윈도우와 대결해서 생존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PC의 몰락

NC가 현재 아무것도 실질적으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이 시점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 PC 체제의 플랫폼이 한 왕조의 몰락을 보듯이 파경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분석한다. 컴퓨터 회사 중 자본력이나 기술력 면에서 가장 안정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애플 사가 별다른 이유 없이 공중 분해될 것이라는 유언비어는 점점 사실처럼 여겨지고 있고, 마크 안드레센의 쿠데타 부대가 마이크로소프트 함대에 일격을 가해 대성공을 거둔 양상을 띤 것이다.

대세의 흐름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네트워크와 온라인 체제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PC 체제의 양대 산맥인 이 두 회사가 미래의 길을 위해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안정 궤도에 진입을 못하고 있다.

애플 사의 E-World는 벌써 구석기 시대의 온라인 서비스로 좌초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익스플로러 3.0도 자바의 도움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크 안드레센의 아성을 흔들지 못하고 있다. 분명 쿠데타는 일어났고, PC 체제를 호령했던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몰락의 길목에서 NC는 마치 현실인 것처럼 사용자들 앞에 둔갑해 버린 것이다.


인터넷과 자본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혁신과 변화가 주는 충격 효과에 있다. 자동차의 개념을 처음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었을 때 사람들은 이 혁신적인 패러다임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믿지 않았다. 결국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서서히 선보이기 시작했고, 이를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앞다투어 자동차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도 전화도 컴퓨터도 이와 마찬가지로 혁신과 변화가 가져다주는 충격 효과에 의해 번창했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다.

인터넷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이 개념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고작해야 이 분야에 종사는 전문가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인터넷은 서서히 일반 PC 사용자들에게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원짜리 동전 네 개로 바다 건너에 사는 이방인들과 리얼타임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변화가 대중에 선보이자마자, 말 그대로 인터넷은 폭발해 버린 것이다. 지금도 컴맹들에게 인터넷의 개념을 설명해 주면 허무맹랑한 얘기로 간주해 버린다. 그러나 이들이 인터넷의 실체를 몸소 체험할 때 이들은 또 한 명의 네티즌으로 등록되게 된다.

인터넷이 돈을 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 게임의 법칙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백화점이 없어지고 자본주의 시장 체제를 궁극적으로 흔들어 버릴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는 사이버 스페이스의 이론도 이제 그다지 허무맹랑한 소설 거리만은 아니다. 현재 인터넷 체제는 미래의 인류 문화와 생활상을 서서히 비추어 주고 있다. NC의 정보고속도로, 사이버 스페이스, 플래시 카드, 그리고 가상 현실까지도 분명 현실로 다가온다. 이것이 기약없는 미래라 할지라도.


Put First Things First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seven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이라는 책을 써서 일약 스타로 부상한 생활 철학자인 스티븐 코비는 7가지 습관 중에 "중요한 일을 먼저 추진하라."라는 구절을 매우 강조한다. 인터넷과 자본주의가 현재 컴퓨터 전문가들의 초안대로 진화되려면 중요한 일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중요한 일은 광섬유 케이블을 컴맹들의 집 앞까지 깔아 주어 정보고속도로를 완성하는 일이다. 그 다음이 플랫폼을 통일하는 길이며, 나아가 NC의 개념을 현실화시켜야 한다.

스티븐 코비는 'Put First Things First'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 교수가 강의를 하다가 학생들에게 "요악 시험!"이라고 외치며, 중간 크기의 항아리를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 항아리를 가리키며, "여기에 얼마나 많은 돌이 들어갈 것 같으냐?"면서, 2, 30개의 주먹만한 돌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또 질문을 던졌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느냐?" 학생들은 "예, 그렇습니다."라고 한결같이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래를 집어넣고 다음에는 물을 가득 채워 넣었다. 교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제, 이 항아리가 가득 찼느냐?" 학생들은 "물론입니다."라고 확신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모든 학생들을 향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내가 지금 이 항아리를 가지고 너희들에게 보여 주려는 요지가 무엇인지 아느냐?" 한 학생이 자신있게 손을 들며 이렇게 답변했다.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자신이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면 중요한 사안들 사이에 생기는 시간의 틈을 이용해 사소한 일들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교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반박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자네만큼 단순한지 아는가? 내가 이 항아리를 통해 보여 주려 했던 요지는 간단하다. 만약 내가 큰 돌을 먼저 집어넣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양의 자갈과 모래와 물을 이 항아리에 담을 수 있겠는가?"

인터넷과 정보고속도로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쟁점은 중요한 일을 먼저 추진하는 일이다.


1996.04. Diggin in the Dirt, 인터넷과 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