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형일 : UC 샌디에고 경제학과 졸업, 매킨토시 사용경력 10년째인 컬럼니스트
영화 배우 겸 감독/연출자인 우디 알렌(Woody Allen)은 속독강의를 통해 전쟁과 평화를 읽은 후 이렇게 답변했다.
"글쎄요,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단어 두 가지를 선택하여 그 이유를 설명해 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효율성'과 '공정성'이라는 두 단어를 내뱉을 것이다. 효율성은 필자가 자신 있고 월등히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 언제나 진리처럼 주장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공정성은 이와 정확히 상반되는 입장에 처해 있을 때 방어의 수간으로 내뱉는 단어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이 두 단어의 중용을 적절하게 구사하기 위해 생각을 하고 행동을 취하게 된다. 배가 고프면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빵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공정성을 생각하게 되고, 배가 부르면 정확히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즉, 효율성과 공정성은 말 그대로 서로 상반되는 모순을 갖고 있다.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이 모순은 해결할 수 없는 패러독스(Paradox)를 갖추고 있었다. 이 패러독스를 풀기 위해 경제학자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도구를 제작했었고, 새로운 공식을 창출하고 이상적인 체제를 고안해 냈었다.
효율성은 변화를 주도하며, 공정성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반작용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면 그것은 효율성에 의한 것이고, 세상이 안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공정성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디 알렌이 독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속독 강의를 들은 후 전쟁과 평화를 읽었다면, 그는 분명 '러시아'라는 단어는 확실히 기억할 것이다.
컴퓨터 기술은 20세기가 낳은 최대의 걸작이다. 한 번도 완벽하게 이해해 보거나 실질적인 해답을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문명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깊숙이 파고들어 중심 구실을 하는 이 바이너리(Binary) 문명은 확실히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내용처럼 '효율성'과 '공정성'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인류 제 2의 문명이다.
컴퓨터는 인간과 흡사한 점이 많다. 인터페이스(Interface)라는 용어 자체가 사고하는 능력을 보유한 두 체제의 브리지 역할이라고 판단할 때, 인간은 분명 용어 선택 면에서부터 컴퓨터에 생각을 부여한 셈이 된다. 쉽게 설명하면, 사전적인 의미에서 인퍼테이스는 상호작용을 이루어 내는 연결 고리라는 뜻으로, 통역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필자는 수년 전 매킨토시 관련 잡지 컬럼에서 인간의 오감과 컴퓨터가 진화되어 갖추게 될 오감에 대한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컴퓨터라는 매체는 접하면 접할수록 살아 있는 듯한 허망한 딜레마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지고 있다.
GUI와 효율성
애플 사의 매킨토시는 탄생 초기부터 기존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좀더 효율적인 인터페이스라는 이미지보다는 무언가 다르고 익숙하지 않은 값비싼 장난감처럼 인식되었었다(물론, 스티브 잡스의 취지는 이와 정반대의 입장이었지만).
그러나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모든 고정 관념은 꺠어지고 그랙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라는 개념은 확연히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미래의 표준이라는 개념을 심어 주었다. 이러한 슬픈 역사를 대변이라도 하듯이 지난 10년간 매킨토시가 사활을 걸고 판매한 매킨토시 OS의 총 판매량보다 5개월 남짓 판매된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윈도우 95가 더 많은 팬매고를 올렸다. 이 사실은 솔직히 컴퓨터 시장에서 효율성은 언제나 공정성 있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애플 사는 언제나 공격적인 입장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 내는 이상적인 컴퓨터 회사이며,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이와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는 '공정성'있는 회사이다. 물론, 두 회사를 극단적으로 묘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으나, 논리의 억지 차원에서 받아들인다면 분명, 애플 사의 경영진은 'GUI'라는 단어 하나는 확실히 기억해야만 하겠다. 애플 사가 컴퓨터 운영체제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지난 10년간 노력한 결실은 'GUI'라는 한 단어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21세기를 이끌어 갈 차세대 개념의 컴퓨터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봐야겠다.
"현재 퍼스널 컴퓨터라고 불리는 기기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네트워크 컴퓨터의 출현과 미디어
500년 전 구텐베르그(Gutenberg)의 활자가 제 1세대의 미디어로써 '흡혈귀'라는 인물을 전 유럽에 심어 놓았다면, 제 2세대 미디어인 공중파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엉뚱한 영웅들을 창출해 냈다. 로브 라이너(Rob Reiner) 감독은 대통령의 연인(The American President)이란 영화에서 이런 인상적인 대사를 남긴다.
"만약 1940년에 미국 가정에 현재와 같은 수준의 텔레비전이 보급되어 있었다면, 장애자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그것도 네 번씩이나)." 서태지와 아이들과 마이클 조단이 공중파 텔레비전의 어시스트 없이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을까? 전자의 경우는 찬반의 논쟁이 있을 수 있겠으나, 후자의 경우는 공중파 방송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물론 필자는 서태지나 마이클 조단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만약 이들이 이러한 미디어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면 분명히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현실적인 질문은 어떠한 해결책도 마련해주질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지난 5~6년 사이에 갑작스럽게 확산된 네트워크와 케이블 미디어 개념 기존 디지틀 세상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으며, 자칫 확산되면 우리가 퍼스널 컴퓨터라고 생각했던 기기들이 비틀즈의 향수처럼 전락해 버릴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5년 전만 하더라도 디지틀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기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컴퓨터라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추가되면, 데이터베이스, 워드프로세싱, 스프레드시트,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요즘 디지틀이란 의미는 컴퓨터라는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활동 영역을 고수하는 네트(NET)로서, 정보, 사라으 스포츠, 음악, 그리고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이동시켰다. 이 개념이 바로 요즘 일어나고 있는 차세대 컴퓨터 개념인 NC(Network Computer)와 IA(Internet Appliance)로서, 머지않은 장래에 기존 데스트콥 컴퓨터의 기반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메타포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 새로운 메타포를 가장 먼저 상업화시킬 준비에 착수하고 있는 기업은 인터렉티브(Interactive) 텔레비전으로 유명한 오라클 사이다.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 새로운 개념의 네트워크 컴퓨터는 월드와이드웹 체제를 기반으로 제작될 것이며, 기존 PC 기술과는 개념 자체를 달리 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윈도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인터넷 어플라이언스(Internet Appliance : 인터넷 전자 제품)라고 불리는 이 네트워크 컴퓨터는 서버에 연결되어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더미 터미널(Dummy Terminal)과 동일한 개념이지만, 실질적인 활용 범위를 관찰해 보면 기존 퍼스널 컴퓨터보다 더 광범위한 영역을 보유하고 있다. 5백 달러 이하에 판매될 이 제품은 인터넷 접속을 전제로 4MB 램, 4MB의 플래시 메모리, 리스크(RISC) 프로세서, 마우스, 그리고 조그마한 모니터가 제공된다.
5백 달러의 가격으로 현실적인 네트워크 컴퓨터(NC)가 탄생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미지수이지만, 컴퓨터 체제에서 불가능이란 단어는 벌써 의미를 상실하지 않았는가? 보다시피, 이 네트워크 컴퓨터는 하드 드라이브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모든 소프트웨어를 우리가 비디오 테이프를 대여하듯이, 인터넷 상에서 대여하여 플래시 메모리에 담아 놓고 활요한 후 다시 서버로 반납하는 체제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네트워크 컴퓨터가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컴퓨터의 현실화에 가장 큰 열쇠를 쥐고 있는 요소는 속도와 가격이다. 현재 네트워크 컴퓨터는 개념적으로 기존의 퍼스널 컴퓨터보다 모든 면에서 진보적인 개념을 취하고 있지만, 더미 터미널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속도의 문제는 현재 기술로는 해결책이 없으며, 어쩌면 영원히 퍼스널 컴퓨터를 추월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앞에 언급한 사양들을 과연 5백 달러 수준에서 판매할 수 있다는 보장도 현재로서는 없는 상태이다. 만약, 오라클이 이 5백 달러의 상한선을 지키지 못하고 가격을 올린다면 기존 퍼스널 컴퓨터 체제와의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네트워크 컴퓨터가 지는 모든 장점들의 의미가 축소된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이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가 기존의 PC 체제를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며, 오라클은 네트워크 컴퓨터를 통해 기존 퍼스널 컴퓨터의 현실적인 대안을 제공하며, 먼 장래를 위해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의 입지를 넓히는데 의미를 두어야 하겠다.
선 효율성, 후 공정성
다시 효율성과 공정성의 비로 화제를 돌려야겠다. 애플 사가 10년 전 GUI 체제를 미래의 플랫폼이라고 주장했을 때 컴퓨터 시장의 반응은 현재 네트워크 컴퓨터에 대한 반응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애플 사가 이러한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투쟁을 겨듭한 결과, 현재 GUI 체제를 표준 운영 플랫폼으로 만들어 놓았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애플 사나 오라클 사는 변화를 주도하는 효율적인 회사이며, 나머지 대부분 회사들은 공정성을 중요시하며 관례를 따르는 보수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해 주듯이 효율성은 항상 변화를 주도해 왔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공정성(공정성은 전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안전한 동굴 속에서 낚시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에 의해 진보되어 나갔고, 공정성은 안전 궤도를 확인한 후 스며드는 보수 세력에 의해 안정성을 유지해 왔다.
1996년은 다시 한 번 컴퓨터 역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남길 것이며,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다. 작년 한 해 뜨겁게 소프트웨어 시장을 달구었던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윈도우 95는 기존 32비트 GUI 운영체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GUI 체제를 컴퓨터 시장에서 안전 궤도에 정착시킨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변화를 유도하는 기업은 효율성 개념에서 파생된다. 오라클 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개척자이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돈키호테이다. 10여년 전 애플 사가 시도했듯이 오라클 사도 다시 한 번 세기의 퀴즈쇼를 펼친다.
"과연 네트워크 컴퓨터(NC)와 퍼스널 컴퓨터(PC) 중 미래의 플랫폼은 무엇일까요?"
필자의 답은 네트워크 컴퓨터이다.
1996.03. Digging in the Dirt, 세기의 퀴즈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