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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yrus/Digging in the Dirt

Digging in the Dirt 3, 레세-페(Lasissez-Faire)

하형일 : UC 샌디에고 경제학과 졸업, 매킨토시 사용경력 10년째인 컬럼니스트


'쥬라기 공원'과 최신작 '잃어버린 세계'로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장르에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마이클 크라이튼은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무게에 비해 매우 단순한 논리로 글의 주제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그것은 다른 아닌 진화(evolution)와 통제(control)의 변증법적 논리이다.




레세-페(Laissez-Faire)는 경제학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효율성과 공정성, 이 두가지 요소를 동시에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주는 인간 본능의 논리이면서, 자유 경쟁 체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의 저자인 에뎀 스미스는 레세-페의 원리를 적용시켜 통제라는 도구가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진화(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를 받아들인다는 전제 하에)를 방해하는 필요악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통제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경제의 능률은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역설했다. 물론 여기에 현실적인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경제학자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에덤 스미스의 레세-페의 논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반복되면서 진화한다는 절대절명의 진리를 거부하는 경제학자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한 조직체가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프레임을 통해 발전한다는 논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반복되면서' 진화한다는 원리는 주목해서 관찰해 볼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반복(Repeat)'이라는 단어는 동일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변화없는 사칙연산 개념의 반복은 진화나 발전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진화를 표방할 때 사용되는 반복의 의미는 'repeat'보다는 'iteration'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iteration'은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면 'repeat'와 대동소이하지만,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iteration'은 반복을 거듭하면서 진화한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수학적으로 'repeat'의 개념을 예측할 수 있는 선형(linear) 수학이라고 한다면, 'iteration'은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비선형(non-linear)수학이라고 할 수 있다.


"Life at the Edge of Chaos"

마이클 크라이튼의 최신작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는 '쥬라기 공원(The Jurassic Park)'의 속편인 동시에 그가 전편에서 주장했던 카오스 이론의 문제 제기('iteration')에 대한 복잡성 이론의 해답('configuration')이기도 하다. 표면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본질은 반복하면서 진화한다. 물론 비생명체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의 연상에서 루프(loop)의 반복을 'iteration'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단순히 반복된다는 차원을 뛰어 넘어 변화하거나 진화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반복의 개념은 무통제(anarchy) 아래서 진행되는 원인과 결과의 순환이 아닌 혼돈의 상태에서 경계를 두고, 이 경계에서 너무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면 변화나 통제의 극대화(또는 극소화)로 인해 자연 소멸한다는 논리이다. 이것이 발로 복잡성 이올니 제기하는 '카오스의 경계구역(the edge of chaos)'이며, 크라이튼의 공룔 크로니클(chronicles: 한 작가가 한가지 주제로 여러 편의 작품을 내는 것)의 핵심이다. 즉, 진화는 변화하려는 힘과 이것을 통제하려는 또다른 힘이 중용에 위치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달성하며, 이 원리가 바로 경제학의 레세-페인 것이다.

진화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헤겔이 단정한 물질론에 입각한 변증법에 의해 변화와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결정내리기에는 적지 않은 모순이 기다리고 있다. 좋은 예를 들어보자. 인간이라는 종(species)은 다른 종과 달리 물질적인 자산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산산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를 물질적인 자산이라고 한다면, 컴퓨터에 사용되는 언어는 정신적인 자산이 된다. 즉, 가시적인 관점에서 하드웨어는 CPU에서 키보드 덮개까지 물질적인 자산이며,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언어에서부터 게임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인 자산이 된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카오스의 경계구역에 해당되며, 변화와 통제의 순리에 의해 역동적으로 진화한다.

컴퓨터가 진화한다는 사실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언어에 있다. 컴퓨터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와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과연 다르다면 어떻게 달단 말인가? 컴퓨터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해 왔고 또 여러 형태의 포맷이 있다. 컴퓨터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와 유사하면 할수록 고급 언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바로 컴퓨터가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입증하는 증거이다.

필자는 '93년도에 맥월드의 'Shaking the Tree' 컬럼을 통해 '애플의 오감도'라는 제목으로 컴퓨터라는 매개체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오감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한때는 GUI체제를 'Look & Feel' 개념의 인터페이스라고 부른 이유도 윈도우나 매킨토시 OS가 인간의 오감 중 보고 느끼는 두 가지 감을 현실화시켰다는 데 입각한 논리였다.


언어같지 않은 언어(Postscript Language) 1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 Language)와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은 일반 사용자들 사이에 일상적으로 표현되는 어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능적인 의미에서만 사용될 뿐이지, 이 어휘들을 언어차원의 개념에서 받아들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포스트스크립트는 서체나 그래픽을 입력하거나 출력하는데 사용되는 언어로써, 현재 전자출판으로 제작되는 모든 잡지나 책의 서체와 일러스트레이션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과연 이 언어같지 않은 언어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한글(아래아한글)의 글꼴과 어떻게 다르며 장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범주에서 포스트스크립트 개념과 글꼴(트루타입 글꼴) 개념의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잔자는 수학(언어)적인 표현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며, 후자는 회화적인(drawing) 표현방법을 사용하는데 있다. 수학을 패턴의 학문이라고 가정하여 포스트스크립트 서체는 출력을 패턴의 일환으로 계산한다면, 글꼴 서체는 화면 서체와 출력 서체의 다운로딩에 의한 짜맞춤 격이 되겠다.

좀더 기능적인 차원에서 예를 들어 보자. 만약 필자가 이 컬럼을 포스트스크립트 서체와 글꼴 서체 두 가지 방식으로 문서 파일을 제작했다고 하자. 후자의 경우는 이 문서 파일을 출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조건은 이 문서 파일을 제작한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이 문서 파일을 출력할 프린터가 필요하다. 현재 아도비사의 애크로뱃(acrobat)이나 그라운드 사의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 소프트웨어는 문서 파일을 제작한 원본 애플리케이션이 없어도 출력과 보기를 가능하게 해 주미나, 이 해결책은 원본 애플리케이션 대신 애크로뱃이나 커먼 그라운드가 필요하다는 전제는 피할 수 없다는 결점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글꼴 서체 개념은 이 두가지 선행 조건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출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포스트스크립트 출력 개념은 전자와는 상당히 다르다. 필자의 컬럼을 담은 문서 파일을 포스트스크립트 기능이 있는 애플리케이션에서 제작한 후 출력을 프린트 명령 대신 포스트스크립트 파일로 대치한다면 필자의 컬럼은 프린터를 통해 A4 용지에 출력되는 대신 한 장의 플로피디스크에 담기게 된다.

후자는 플로피디스크에 파일을 담는 것이 저장이지 어떻게 출력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자명하다. 포스트스크립트 개념에서 출력을 종이에도 하지만 디스크에도 할 수 있다. 디스크에 단순히 파일만 담았을 경우, 이 파일을 출력하기 위해서는 원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파일을 연 후에 출력해야 하는 두 단꼐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러나 포스트스크립트 파일인 경우 이러한 이중 단계를 거칠 필요없이 프린터로 바로 출력될 수 있다.

그러면 포스트스크립트 언어의 획기적인 장점을 설명해 보자. 글꼴 서체 개념으로 한글, 일어, 중국어, 인도어, 히브리어, 라틴어, 우러남어 등으로 제작된 윈도우 문서 파일을 출력하려면 이들 언어의 서체는 물론이고 이들을 생산한 모체 애플리케이션이 요구됨과 됭시에 이들 언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여러 국적의 윈도우 버전이 필요로 해진다.

그러나 포스트스크립트 파일로 저장되었을 경우, 문서 파일에 수록된 서체들만 프린터에 내장돼 있으면 곧바로 출력이 가능하다. 즉, 포스트스크립트 언어를 지원하는 프린터는 문서 파일에 사용된 서체만 폰트박스에 내장돼 있으면, 수백가지 애플리케이션에서 제작된 문서 파일들을 모체 애플리케이션 없이 포스트스크립트 파일체제로 출력할 수 있다는 '언어'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언어같지 않은 언어(HyperText Markup Language) 2

또다른 언어같지 않은 언어는 요즘 통신체제를 송두리째 뛰바꿔 놓은 월드와이드웹의 HTML이다. 컴퓨터 업체들은 신기하리 만큼 웹체제의 표준 포맷을 HTML로 통일해 버린다. 돌이켜 보면, 컴퓨터 역사상 개발자들과 관련업체들이 이렇게 완벽한 통일안을 제시한 경우가 전무후무하다. 운영체제의 통일은 접어두더라도, 일반 애플리케이션의 텍스트조차도 표준 포맷을 결정짓지 못한 판국에 앞으로의 PC 시장을 이끌어나갈 웹의 표준 포맷을 통일해 놓았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서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영어 속담에 이런 표현이 있다. "어떤 사건이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완벽하다면, 그것은 아마 거짓일 것이다." HTML이 바로 이 영어 속담과 맥을 같이 한다. 현재 웹체제에서 통용되고 있는 HTML 체제는 말 그대로 '폭중전야의 고요'라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불안정한 체제이다. 좀더 직선적으로 표현하자면, HTML보다 우수한 포맷이 출시되기 전에 마땅한 대안이 없어 일시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컴퓨터 시장은 현재 월드와이드웹에 사활을 걸고 있다. CUI 체제가 무너지고 GUI 체제로 전환되면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웹체제는 컴퓨터 업체들과 개발자들에게는 앞으로 10년간은 돈벌이가 가능한 노다지이며,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HTML 체제는 유치한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의 월드와이드웹에 디스플레이되는 HTML의 서체와 그래픽은 너무 제한적이다. 만약 팔자가 임의로 복잡한 그래픽과 다양한 서체를 담은 문서 파일을 웹에 띄우려며너, 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필자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기술적인 차원의 결점이 현 HTML 체제에서는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넘기 위해 많은 개발자들과 업체들은 HTML 포맷보다 우수한 새로운 포맷들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현 단계에서 시판되고 있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썬마이크로시스템 사의 '자바(Java)' 언어와 아도비 사의 '애크로뱃(Acrobat)'은 HTML 포맷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우수한 스크립팅 도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2차원적인 서체와 그래픽의 제한적인 한계를 벗어나는 일은 현재 상황에서는 시간 문제일 따름이며, 보다 고차원적인 해결책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2차원적인 웹의 HTML 체제에 입체감을 가중시킬 수 있는 기술은 오디오 기능이다. 현재 프로그래시브 소프트웨어 사의 '리얼 오디오(Real AUdio)'와 보컬텍 사의 '인터넷 웨이브(Internet Wave)'는 미래의 전화혁명을 가져올 수 있는 파괴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기술이다. 그리고 머지않을 미래에 HTML 포맷을 마치 CUI 체제처럼 전락시킬 수 있는 3차원적인 표준 포맷이 VRML(Virtual Reality Modeling Language)이 등장하면 월드와이드웹은 동화상 차원의 디스플레이에서 벗어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폭로(Disclosure)'에 나오는 가상현실에 입각한 3차원 데이터베이스의 출현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언어같지 않은 언어가 이렇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진화되어 일반 사용자의 모니터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진화와 통제의 열쇠

이 세상 모든 것은 진화와 통제의 조화로 발전된다. 필자는 이런 변화를 과감히 '발전'이라고 표현했다. 컴퓨터는 인간의 언어처럼 독특한 언어체제를 지니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진화되어 간다. 우리가 지금도 한글 서체에 포스트스크립트 체제의 대중화를 가져오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진화는 적질히 진해되었는데 통제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포스트스크립트 언어는 레이저 프린터의 대중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포스트스크립트 프린터는 강력한 통제의 대상이 되어 왔고 현재 40~50 만원대에 판매되는 일명 레이저 프린터는 포스트스크립트 기능이 첨가되어 있지 않다. 만약 90년대 초반 다양한 서체의 폭발적인 수요에 발맞추어 레이저 프린터도 대중화가 되었다면, 현재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2바이트 포스트스크립트 서체를 기본 서체로 사용하여 훨씬 미려한 서체의 출력을 포스트스크립트 파일로 단행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진화의 흐름을 차단하는 통제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진화와 통제는 필요에 의해서 진행되어야 하며, 이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은 다름 아닌 사용자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HTML과 앞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갈 언어의 진화는 사용자들의 각벽한 관심이 필요하며, 이 진화와 통제의 열쇠는 레세-페의 원칙에 입각해야만 한다.

레세-페!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1996.01. Digging in the Dirt, 레세-페(Lasissez-Fa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