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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s and Muse

마리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변해간다. 그러나, 그것은 슬픈 일이기도 하다

마리 이야기.


이성강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고, 뜻하지 않게 잭팟을 터뜨린 애니메이션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잭팟이 흥행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이 애니메이션이 왜 앙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발에서 대상을 수상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때 이 애니메이션을 심사했던 심사위원들이 지금의 나와 같은 것을 느꼈다면, 그들은 분명히 인생을 더 살아본 사람들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적어도 그 이유를 이제는 나도 남에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마리이야기의 대부분은 이제 가물가물한데, 이 작품이 보여준 좋은 색감, 소재, 모든 것은 이제는 희미한 영상으로 밖에 기억되는 것이 없다. 하지만, 단 한가지 생각나는 것은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어른이 된 남우가 말하는 독백,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다만, 내가 변했을 뿐이야'라는 말이 그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마리이야기를 볼 때는 단편들을 모아서 하나의 장편으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스토리의 연속성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인상적으로 남았던 장면은 있어도, 뭔가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내용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가슴과 마음을 파고들던 애니메이션, 만화. 그것들은 변했는가? 아니면 자신이 변한 것인가? 더이상 이들이 당신의 영혼을 부르지 못한다면 대체 변한 것은 무엇인가? 작은 하나의 조각에도 예술가의 숨결을 느끼던 당신이 변한 것인가? 슬프게도, 나를 제외한 다른 것은 변한 것이 없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나는 주변의 것들이 변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비록 그때보다 조금 더 대중적으로 변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그때도 조금 덜 대중적이고자 하는 작품들이 있었고, 조금 더 대중적이고자 하는 작품들이 있었다. 변한 것은 이들이 아니다.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는데, 마리이야기의 대상 수상 당시, 어떤 프랑스 노인이 이성강 감독을 붙잡고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어서 고맙다'라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성강 감독의 수상 당시 인터뷰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정확하게 어느나라 사람이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이해했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그 노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 무례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 노인은 과연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렸을까? 마리이야기라는 작품을 보고서 작품성에 감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노인의 눈물은, 자신의 흘러가버린, 감수성 예민했던, 세상에 대한 새로움과 열정 가득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 것이다.

뛰어난 예술 작품은, 작품 그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 이야기에 따르면, 정말 현실과 같은 그림을 원하는 왕이 있었는데, 한 화가가 그의 바람에 따라 방 하나에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은 정말 뛰어나서, 방에 들어서는 순간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결국 왕과 화가는 함께 그 그림 속으로 사라졌다는데, 이 노인은 그 순간에 같은 느낌을 느꼈을 것이다. 생소하기만한 다른 문화의 소년의 이야기를 이 노인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다만, 이 소년의 이야기가 그 노인과 영혼의 공감을 불렀다면, 이 옛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나는 이제 흔히 지나가는 애니메이션을 봐도 예전처럼 나의 영혼이 그것과 대화할 수 없음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변해간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나와 예술작품들이 영혼의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아무런 느낌도 가지지 못하는 메마른 가슴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면 참으로 슬프다.


그래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어서, 내 영혼을 울리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면, 나 역시 이 노인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Written by Celdee, 2006.6.26, from Animate, Hit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