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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눈동자 : 장하림 너는 깨끗하냐고?

유명했던 '여명의 눈동자'의,

"스즈끼! 왜 네가 여기에 있어! 왜 네가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

"저런 빨갱이 새끼.."

이 장면.




그런데, 이 장면조차 장하림도 일본군에 복무했고, 생체 실험에 참여했으면서 같은 조선 사람도 구하지 않았던 장하림 너도 깨끗하지 않은 주제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냐고 비웃는 사람이 있다.

틀림없이, 이 사람은 여명의 눈동자 전편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뻔히 보이는 '쿨'한 위선자다. 대체 얼마나 쿨해야 이 지경에 이를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여명의 눈동자의 주인공 중 장하림은 세 주인공 중 가장 목격자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일 뿐이며, 세 주인공 누구도 시대에 저항하려고 한 사람은 없었다. 이 작품은, 비틀린 시대에 의해 희생된 각각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대장장이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최대치, 엘리트 과정을 밟다가 학도병으로 끌려간 장하림, 그리고 몰락한 유산층의 딸인 윤여옥. 이들은 희생만을 강요했던 그 시대를 살았던, 각 계층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가해자의 위치에 빌붙었던 자들도 있었다.

과연 장하림은 자신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스즈끼한테 저런 말을 한 것일까? 김성종 작가는 과연 장하림을 그런 목적으로 그려냈던가? 아니라고 본다. 장하림은 옳다고 믿는 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인간이 아니다. 워낙 굴곡진 삶을 살아가던 세 주인공 중에서 가장 무난하게 보이는 것은 장하림이지만, 여명의 눈동자는 장하림만을 쫒는 영웅담을 그리는 소설이 아니다. 극화는 소설과 조금 의도가 다른 부분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워낙 살아가기 위해 꿈틀거리는, 비열한 인간 군상들의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것이며 원작을 훼손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소설과 극화를 혼동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며 함께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건데, 여명의 눈동자를 보면서 장하림 너는 깨끗하냐? 라고 묻는 것은, 저열한 수준의 이해일 뿐이다. 저 장면에서 분노를 느꼈다면 그것은 기회주의로 비틀린 우리 역사에 대한 분노이지, 장하림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장하림 너는 깨끗하냐라고 묻는 사람들의 바늘구멍에는 예수라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작가가, 이 장면의 화자로, 이들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최대치가 아닌, 장하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겠는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한층 더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 대한 환멸만 늘어갈 뿐이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조상의 친일 행위가 (잘 살고 있는) 나와 무슨 상관이길래 개인 재산까지 손을 대냐고 말하지만, 자신들이 조상들의 친일 행위 때문에 비렁뱅이가 되었어도 조상과 무관하다고 말 할지 궁금하다. 이렇게 '장하림도 친일한 주제에 누가 누구를 욕해'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에게는, 일찍이 강철중이 좋은 말을 했었다. 세상은 원래 덜 나쁜 놈이 더 나쁜 놈 조지는 법이라고. 그리고, 이름 난 친일파 놈들은 아주 나쁜 놈들이라서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도 무방하다.

"스즈끼! 왜 네가 여기에 있어! 왜 네가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

"저런 빨갱이 새끼.."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불행한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덧글(2011.8.26), 장하림역을 맡았던 박상원씨는, 우습게도 서울시 무상급식에 관한 투표에서 정신나간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피켓 시위를 했다. 이 사람은 주민투표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나 이런 시위를 했을까? 이것을 보면, 극중에서 했던 말을 이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