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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yrus/Digging in the Dirt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Episode 36 - 40

Episode 36. 세익스피어는 붓으로만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다.

IBM사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협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게리 킬달은 실리콘 밸리의 역사에서 윌리엄 쇼클리와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그 어쩔 수 없는 대세'를 수락한 대표적인 인물로 남게 된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실리콘 밸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화로 진화될 IBM사의 운영체제 헌팅 사건 직전만 해도 운영체제 시장의 1인자로 군림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변 도시인 샌타크루즈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던 게리 킬달은 1980년 8월에 벌어진 빌 게이츠와의 악연을 계기로 실리콘 밸리와 인연을 달리하고 만다.

한 여름날의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이 사건이 디지털 산업에 끼친 영향은 너무나 컸으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간 잔혹한 운명을 혼자 힘으로 반전시키기에는 눈 앞에 닥친 현실이 너무나 냉혹했다. 결국 이 사건을 시작으로 게리 킬달의 이름 앞에서는 항상 '태평양 상공에서 운명이 바뀐 사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그가 한때 운영체제 시장을 좌지우지한 '큐도스의 진짜 사나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마저도 대부분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 운영체제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한 그의 천재적인 엔지니어적 역할보다는 "그 때 정말 비행기를 타고 있었어요?"라는 말로 화두를 장식했고, "그 때 만약..."이란 소프트웨어 시장의 대전제는 항상 그가 해명해야만 하는 몫으로 남아 그를 괴롭혔다.

IBM사의 어콘 프로젝트팀이 운영체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그의 사무실이 있는 퍼시픽그루브 시를 찾았을 때 게리 킬달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당시 새로 구입한 경비행기를 테스트하기 위해 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공식석상에서 부인도 긍정도 한 사실이 없다. 사실 게리 킬달의 비행기 에피소드는 그의 인생 여정을 돌이켜 볼 때 그리 중요한 요소는 될 수 없다. 문제는 게리 킬달이 이 사건을 계기로 실리콘 밸리와 무관한 삶을 살아감은 물론, 자신이 이룩해 놓은 운영체제 시장에서 단 한번도 자신의 위상에 걸맞는 평가를 받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빌 게이츠의 모든 것으로 성장한 MS-도스는 자생력을 지닌 생명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세포 분열을 해나가기 시작했고, 게리 킬달이 평소 주장해 온 운영체제의 이원화는 결코 현실화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가 서서히 그 잠재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80년대 초, 표준 설정에 집요한 집착을 보인 밸리의 엔지니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독성을 강하게 내포한 담배와 술과 같은 기호 식품들도 여러 가지 상표를 지니며 경쟁력 있는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마당에 소프트웨어의 표준 설정에 의한 독점은 당시 전문가들마저도 거의 현실성 없는 꿈의 유토피아로 단정하고 있었다.

물론 빌 게이츠는 자신의 운영체제가 적어도 무어의 법칙이 다할 때까진 독야청청할 수 밖에 없는 비법이 소프트웨어가 지닌 '길들여짐'이란 특성에 기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일찍 간파한 뛰어난 사업가였지만, 콜라와 정당이 두 개가 존재하듯이 PC 시장의 운영체제로 적어도 이원화 구조를 형성할 것이라는게 당시 보통 사람들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더욱이, VHS와 베타 맥스의 표준 설정 과정에서 하나의 표준이 탄생하기 했지만, 수백 개의 테이프 제조업체들이 채택된 VHS 표준에 적합한 상품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운영체제를 판매하는 아성을 구축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실리콘 밸리에서 빌 게이츠는 경쟁자는 더 이상 게리 킬달이 아니라, 매킨토시라 불리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로 운영체제 시장에서 또 다른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스티브 잡스였다. 게리 킬달은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CD-ROM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재기에 몸부림치지만, 밸리는 더 이상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순수의 시대가 아니었다. 참신한 테크놀로지와 아이디어 뒤에는 항상 대자본의 조직적 전술이 뒷받침되어 있었으며, 샌드힐가의 컨설턴트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현실적인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뚜쟁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면서 게리 킬달의 재기에 찬물을 끼얹고 만다.

게리 킬달은 80년대 후반 자신이 설립한 디지털리서치사를 빌 게이츠의 또 다른 앙숙인 레이 누다(Ray Noorda)의 노벨사에 1억 2,000만 달러에 판매하면서 실리콘 밸리에서 자신의 종적을 조용히 감추고 만다. 실리콘 밸리의 중심에서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 운영체제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한 킬달의 옛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는 캘리포니아의 휴양 도시들을 전전하면서 은퇴한 갑부의 모습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게리 킬달의 은퇴 생활은 해피 엔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실리콘 밸리와 인연을 달리한 후, 지난 14년간 벌여온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상징적으로 요약이라도 하듯이, 그 어쩔 수 없음을 수락한 고독한 방랑자의 모습으로 1994년 7월 몬트레이 시의 해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호프집에서 만취한 상태로 바닥에 쓰러지면서 의식을 잃고 만다. 그리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온 게리 킬달은 정확히 사흘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뇌출혈로 5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빌 게이츠는 윈도 95의 후반 작업으로 여념이 없었으며, 윈텔 제국의 아성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철옹성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1994년 실리콘 밸리에 비친 게리 킬달의 이미지는 '한 때 날렸던 그렇고 그런 엔지니어'에 불과했으며, 그의 죽음을 알리는 실리콘 밸리의 매스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변의 동료들을 중심으로 조촐하게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서 빌 게이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아니러니컬하게도 게리 킬달은 빌 게이츠가 큐도스의 아성으로 성대하게 건설한 시애틀 시의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부와 명예를 모두 멀리한 채 진실만을 품에 안고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이렇게 게리 킬달은 30년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고향에 돌아왔으며, 실리콘 밸리는 그의 주검을 통해 세익스피어는 결코 붓으로만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Episode 37. 밸리에서 칭송받지 못한 히어로들의 이름으로

실리콘 밸리의 역사가 창출해 낸 비운의 천재들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윌리엄 쇼클리와 스티브 워즈니악, 그리고 게리 킬달을 언급할 것이다. 이들은 엔지니어적 천재성으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던 컴퓨터 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밸리의 팽창 과정에서 그 어쩔 수 없을의 비애를 겪은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으로 사람들에게 동정표를 받고 있다.

하지만 쇼클리와 워즈니악은 킬달에 비한다면 다른 부류의 행복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연구원들을 신뢰하지 못해 지극히 사소한 문제로 전 연구진에게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강요한 쇼클리는, 독선적인 이미지와 함께, '8인의 배신자들'에 의해 실리콘 밸리에서의 모든 꿈을 송두리째 빼앗긴 후 꿩 대신 닭 격으로 추진한 '천재들의 정자 은행'이 예상치 못한 백인 우월주의로 표출되면서, '트랜지스터의 아버지'보다는 정자 은행을 설립한 사업가란 이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굳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쇼클리는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노벨 물리학상을 '트랜지스터의 아버지'란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고,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100인의 인물들'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혀, 컴퓨터 분양에서는 HTML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와 함께 프레더리코 페르미, 요나스 살크, 라이트 형제, 그리고 시그마 프로이드와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거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더욱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자신의 일생을 다룬 <타임>지의 특집 기사를 한때 자신의 꿈을 헌 신짝처럼 내버린 '8인의 배신자들' 중의 한 사람인 '미지막 페어 차일드' 고든 무어가 직접 집필했다는 점이며, 과거의 소대원이 지휘관을 그리워하며 남긴 이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쇼클리의 진정한 재평가를 가능케 하기에 충분했다.

스티브 워즈니악도 사실 '실리콘 밸리의 불행아'라는 표현을 듣기에는 밸리에 끼친 영향이 너무나 컸으며, 지금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룩한 애플 컴퓨터의 신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떠한 기준을 그에게 적용시켜도 그가 퍼스널 컴퓨터 시장의 잊혀진 천재라고는 볼 수 없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천문학적 부를 축적하지도 못했고, 페어 차일드의 '8인의 배신자들'처럼 엔지니아 분야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도 없지만, 워즈니악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삶을 살아왔다. 공인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아온 그는 마이크로스프트사의 윈도 시리즈와 인터넷에 의한 디지털 혁명을 가능케 한 매킨토시 컴퓨터의 출현을 눈 앞에 두고 실리콘 밸리의 영광에서 자진 후퇴하면서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는 밸리 역사상 최고의 아이콘으로 성장한 스티브 잡스를 길러냈고, 그가 디자인에서 마무리 조립까지 혼자의 힘으로 완성해 낸 애플 컴퓨터는 지금까지 어떤 엔지니어도 흉내내지 못한 거대한 발자국으로 남아있다.

'워즈(Woz)'라는 애칭을 가진 스티브 워즈니악은 실리콘 밸리의 '영원한 낭만주의자'라는 평가와 함께 언제나 베푸는 위치에서 삶을 살아온 남다른 열정을 지닌 위대한 인물이다. 숨가쁘게 전개된 애플사의 팽창 과정에서 워즈니악을 험담하거나 평가 절하하려는 상대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평생 소원이던 멋진 엔지니어와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초등학교 교사라는 소박한 꿈을 모두 이루어낸 후, 현재 실리콘 밸리를 호령하는 어떤 인물보다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은행 잔고가 결코 성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를 몸소 보여준 그의 행보는 돈을 쫓아 밸리로 몰려드는 수많은 엔지니어들에게 언제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청량제의 의미로 다가갔다. 1998년 워즈의 모교인 캘리포니아 대학은 실리콘 밸리에서 부와 명예를 한몸에 받고 있는 수많은 엔지니어들을 제치고 그에게 졸업 축사를 부탁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치열한 밸리의 전선에 뛰어들 준비로 여념이 없는 후배들에게 소년과 같은 열정으로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만끽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이렇게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삶을 추구한 인물이며, 밸리가 무한 궤도로 팽창하던 80년대 초 누구보다도 높은 부와 명예를 손에 쥘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평범한 개인으로의 귀환이 가능함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준 흔치 않은 영웅이다.

반면 게리 킬달이 52세의 나이로 쓸쓸히 밸리의 변경에서 사라질 무렵,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가 CP/M이란 이름으로 창출해낸 운영체제는 빌 게이츠의 윈도 시리즈란 이름으로 전체 시장의 90퍼센트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빌 게이츠의 기적같은 성공담이 언급되는 과정에서 비행기 조크란 불명예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동일한 프로그램이 하나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바로 이런 면이 프로그래머들과 소설가들을 '창작자'라는 시선으로 동일시하는 이유이다. 만약 팀 패터슨의 큐도스가 항간의 주장처럼 게리 킬달의 코드를 무단으로 복제한 아류작이라면, 자신이 평생을 바쳐 작업한 정신의 자식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날개 돋친 듯 판매되는 그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수락해야만 하는 비애는 글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 때 그랬더라면'이라는 대전제는 지금까지도 소프트웨어 시장의 역사에서 항상 감초처럼 등장하여 우유부단한 킬달과 그의 사업가적 자질을 비판하고 있지만, 좀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보면 게리 킬달의 이미지는 실리콘 밸리에서 실력은 있지만 억울하게 좌초되어 자신들이 기여한 공로에 비해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수많은 비운의 칭송받지 못한 히어로들의 초상이라 볼 수 있다.

밸리에서 꿈을 잃은 사람은 꿈을 찾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 숨은 곳에서 작은 것을 발전시키는 힘 또는 아무 대가 없이 자신들의 일을 천직이라 여기며 묵묵히 맡은 소임을 다하는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있기에 밸리는 아직도 팽창해 하고 있다는 진실을 게리 킬달은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디지털리서치사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운영체제 침공으로 급격히 몰락해 갈 때, 게리 킬달의 참모들은 애플리케이션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게리 킬달은 평생 운영체제라는 한 길만을 걸어왔으며,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제작하여 판매한다는 발상 자체가 창과 방패를 동시에 만드는 모순 관계라 확신하면서 도의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소신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필자는 게리 킬달을 패자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패자라고 생각지 않았기에 패자 부활전을 스스로 거부했고, 또 자신의 운명을 누구보다도 아이러니컬한 방법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를 조롱하는 수많은 밸리의 허수아비들을 역설적으로 패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게리 킬달의 CP/M은 여러 이름으로 변질되었을지언정, 그가 고안해 낸 운영체제란 패러다임은 지금까지도 순수한 모습으로 사용자들에게 남아 있다. 하루에도 수억 번씩 부팅되는 전세계의 PC에 빌 게이츠의 윈도보다 항상 먼저 솟아올라 1초라는 짧은 순간 동안 PC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주는 바이오스(BIOS)는 게리 킬달이 CP/M을 제작하면서 분리시킨 그의 패러다임이다. 윈도 운영체제가 말썽을 부릴 때마다 사용자들이 가장 먼저 키를 두드리면서 게리 킬달의 찰나(刹那)를 잡기 위해 바이오스로 달려가는 것에 대해 빌 게이츠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Episode 38. 적어도 무어의 법칙이 끝날 때까진

많은 사람들은 윈텔 제국을 모노폴리(Monopoly), 즉 독과점이라고 단정짓는다. 하나가 아니니까 모노폴리보다는 듀오폴리(Duoploy)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할 테지만, 이 논쟁에 대한 필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그래서 어쩔 건데?"

물론 윈텔 제국에 독과점방지법을 적용시켜 수평으로 자를 수도 있고, 수직으로 자를 수도 있고, 또 사방팔방으로 분산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독과점이란 철퇴를 맞고 쓰러진 기업이 시장 장악력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는 극히 일부이며, 대부분의 경우 과거와 동일하지만 단지 여러 이름으로 기존 시장을 확대시키면서 과거보다 더 큰 덩치로 재탄생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1906년 독과점방지법에 의해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사가 34개의 독자적인 오일 회사로 공중 분해됐지만, 지역으로 기반을 잡은 엑슨, 모빌, 아모코, 알코, 그리고 세브론 등의 독립 회사들에 견줄 만한 경쟁사들이 등장한 것은 독과점의 혜택이 아니라 때마침 터진 자동차 문화의 보편화로 가솔린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또, 지역별로 분산된 AT&T사의 경우, 애틀랜틱벨사와 퍼시픽벨사로 불리는 베이비 벨사에 대적할 만한 경쟁 기업이 과연 탄생했느냐 하는 점도 의문이다.

독과점방지법에 의해 스탠더드오일사 지분의 3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던 록펠러는 34개의 새로운 기업들의 지분 역시 각각 30퍼센트씩 보유하게 됐으며, 한 세기가 저물어가는 현 시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엑슨사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모빌사는 벌써 합병을 위한 기초 작업을 완료한 상태다. 시장 경제 이론에 따른 독과점은 소비자들의 눈을 속이는 이상의 실효는 아직 거두지 못했다고 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들을 변모시킨 요소는 법의 잣대가 아닌 기존 패러다임의 붕괴에서 찾을 수 있다. 석유와 철로 수송권 장악으로 오일 시장의 90퍼센트를 장악한 록펠러를 변모시킨 것도 가솔린과 자동차 산업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이었으며, AT&T사의 변화도 급속도로 성장하는 이동 통신이란 변수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 진단이다. 다시 말해,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는 궁극적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적어도 무어의 법칙이 다할 때까진 윈텔의 아성은 굳건하다. 이것이 오늘날 밸리의 현실이며, 작은 결론이다. 18개월을 주기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밀도는 두 배롤 높아지고 가격은 반대로 하락한다는 고든 무어의 법칙은 지난 20년간 밸리의 모든 것을 지배해 왔다.

"아는 자 말하지 않고, 모르는 자 어쩔 수 없다."라는 실리콘 밸리의 유행어는 윈텔 제국의 아성이 무어의 법칙이 존재하는 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임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명언이며, 안티-윈텔 진영 또한 이 차가운 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현재 밸리를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인 이 무어의 법칙을 무시하면 어떻게 된다는 사실을 애플사와 IBM사는 몸소 행동으로 보여줬으며, 인터넷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모든 신생 기업들도 이 법칙의 한계 속에서 작은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모든 부와 명예는 무어의 법칙에 비례해 상승과 하강 곡선을 그릴 수 밖에 없으며, 빌 게이츠는 이 곡선을 가장 완벽하게 타오르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빌 게이츠가 창출한 부는 가히 '전설적'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으로 정착되어 버렸다. 만약 철수가 80년대 중반에 2,500달러를 가지고 애플 컴퓨터를 구입했고, 미미는 컴퓨터 대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식을 구입했다면, 빈털터리 철수는 벌써 백만장자가 된 미미를 컴맹이라고 놀려대겠지만,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사고도 남을 거금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의 재력은 안티-윈텔로 대변되는 넷스케이프사의 마크 앤드레센,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 야후사의 제리 양, 오라클사의 래리 엘리슨, 썬사의 스콧 맥닐리, 그리고 AOL사의 스티브 케이스의 전 재산을 합친 금액을 훨씬 초월하며, 이들 밑에서 일하는 수십만 종업원들의 재산을 더해도 빌 한 사람의 재산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무어의 법칙으로 윈텔 제국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부를 축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무어의 법칙에 의해 안티-윈텔 진영의 대표 주자인 애플사가 힘없이 몰락했으며, 이후 윈텔 제국은 안티-윈텔의 이미지를 한낮 잡음에 불과한 노이즈(NOISE: Netscape, Oracle, IBM, Sun and Everybody else)로 전락시켜 버렸다. 무어의 법칙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안티-윈텔의 노력은 잡음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무어의 법칙이 견고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내놓고 있다. 즉 인텔사는 거침없이 더 빠르고 값싼 마이크로프로세서를 18개월을 주기로 생산해 낼 것이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에 발맞춰 더 효율적이고 다기능화된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을 시장에 선보일 것이다. 물론, 무어의 법칙의 한계를 앞당길 수 있는 변수는 언제든지 파생될 수 있으며, 또 이러한 패러다임의 저환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결론은, 무어의 법칙이 한계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빗물이 떨어져 양동이가 넘치는 원리처럼 시간 문제일 뿐이며, 새로운 빅뱅은 반드시 탄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Episode 39. 100년 걸린 다우존스 1만 포인트, 우리는 10년에 끝낸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윈텔 제국 역시 빌 게이츠와 앤디 그루브의 천재적인 사업가적 기질로만 형성된 의도된 체제는 결코 아니다. 보이지 않는 대세의 출현, 즉, PC 시장의 상승 곡선을 주오하면서 오늘날 윈텔 제국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들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5퍼센트 미만의 이윤을 추구하면서 거센 물량 공세로 PC 시장의 대세를 이끌어온 거대한 개미 군단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텔사가 X86 시리즈 칩으로 전세계 PC 시장의 70퍼센트 이상을 독점하고 있을 때, 모토롤라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업체들은 인텔사와는 비교도 안되는 낮은 수익률을 올리는 위치에서 제2, 아니 제3의 X86 호환 CPU를 시장에 쏙아부었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PC 클론 시장의 세력화는 오늘날 우리가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윈텔 제국이란 '그들만의 리그'를 탄생시켰다. 물론 실리콘 밸리의 물고 물리는 복잡한 먹이 사슬 체제를 놓고 단정적으로 적군과 아군을 결정지을 명확한 단서는 없다. 하지만 윈텔 제국의 형성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일등 공신들을 찾아내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델사와 컴팩사를 주축으로 PC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수천 개의 PC 클론 업체들은 비롯해 윈도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각종 응용 애플리케이션과 게임을 판매하는 수만 소프트웨어 및 인터넷 관련 업체들은, 윈도 운영체제와 펜티엄 칩이 구축해 놓은 인프라를 절묘하게 이용해, 호수의 양대 주인인 인텔사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누리는 번영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훌륭한 낚시꾼이란 표현을 듣기에는 충분한 무서운 기세로 윈텔 제국의 아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디지털 경제의 첨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들의 연합 세력은 무어의 법칙이 다하는 날까지 왜 윈텔 제국이 독야청청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들이 확산시키게 될 밸리의 파생 상품들이 가져올 실질적인 여파는 실로 많은 경제학자들에게 다양한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윈텔 제국의 독과점 현상을 걱정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 인텔사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구축해 놓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 점유율이야말로 앞으로 전개될 인터넷 시장의 파생 상품들이 창출한 새로운 가치와 비교한다면 실로 새 발의 피로 인식돼야 한다는 강론을 제시하고 있다.

윈텔 제국의 펜티엄 프로세서와 윈도 운영체제의 콤비 플레이는 이미 PC 시장의 90퍼센트 이상을 장악한 상태이며,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이끄는 제2의 운영체제인 윈도 NT 역시 인터넷 빅뱅 이후 매출 기준으로는 매년 200퍼센트에 달하는 수직 상승 곡선을 그리며 거침없이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데스크톱의 윈도 시리즈와 네트워크의 유닉스 운영체제는 상호 독립된 시장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펜티엄 칩의 저렴한 가격과 맞물려 파격적인 물량 공세를 펼치는 윈도 NT와 백오피스 솔루션은 현재 개인과 기업이 구축하는 인트라넷 서버의 60퍼센트 이상을 장악하는 무서운 속도로, 과거 데스크톱 시장의 기세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네트워크 운영체제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또한 전세계의 상용 애플리케이션을 창출해 내는 150만 명에 달하는 프로그래머들 (전체 시장의 과반수 이상)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비주얼 베이식 언어를 기본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통계는 앞으로 전개될 소프트웨어 시장에서의 윈도의 잠재력을 간접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여기에 PC 산업의 중원으로 급부상한 인터넷 시장에서 80퍼센트에 육박하던 넷스케이프사의 브라우저 시장을 거의 절반 규모로 붕괴시켜 버린 인터넷 익스플로러 4.0과 5.0의 약진은, 앞으로 지속될 인터넷 브라우저 전쟁은 물론 인터넷 멀티미디어 콘텐츠 분야에서도 벌써 경쟁 대상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앞서 나가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윈텔 제국의 선단식 팽창은 결코 운영체제 플랫폼과 인터넷 시장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90년대 중반부터 마이크소포스트 네트워크(MSN)란 미디엄을 발판으로 윈도 사용자들의 인터넷 활동 영역을 구축해 놓았다. 또한, 미국의 4대 네트워크 방송사의 선두주자인 NBC와 공동으로 MSNBC라는 뉴스 미디어를 출현시킴으로써 CNN과 경쟁력을 갖춘 유선 TV 인프라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는 윈텔 제국이 영향력이 기존의 PC와 인터넷 시장을 넘어 케이블 방송 영역이라는 총체적인 멀티미디어 시장에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풍부한 윈텔 제국의 자본은 실리콘 밸리의 벤처 자금 운영 회사는 물론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에까지 그 영향력을 뻗치고 있으며, 실리콘 파워의 힘이 결코 <쥬라기 공원>의 특수 효과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4억 달러를 투가해 일반 텔레비전을 월드와이드웹의 세계로 확대시킬 웹TV(WebTV) 미디어와 저고도 위성으로 전세계 어디에서나 이동 통신과 인터넷의 접속을 현실화시키게 될 텔레데식(Teledesic) 컨소시엄의 주도권 확보는 윈텔 제국이 앞으로 10년 후 장악하게 될 파괴적인 시장 점유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의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윈텔 제국의 독주는 이들이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사업 프로젝트들의 실현 가능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이들이 주목하는 가장 두려워하는 현실은, 20년 전 하나의 상품이 보편화를 이루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던 기간을 5년이라고 가정한다면, 지속적으로 가속화되는 무어의 법칙의 테두리 안에선 적어도 10배 이상 단축된 짧은 기간 안에 일반 소비자들에게 보편성을 드러내고 만다.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가 사용자들에게 보편성을 획득한 기간은 실질적으로 6개월에 지나지 않았으며, 현재 출현하고 있는 수많은 인터넷 컨텐츠 상품들의 시장 장악력은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보편성을 부여 받는 파괴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윈텔 제국의 독과점 체제를 무력화시킬 이론적 근거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으며, 새롭게 부각되는 디지털 경제의 패러다임 역시 윈텔 제국의 지속적인 번영을 뒷받침하고 있거나, 이들의 대세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귀속적 결정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세는 굳어졌다. 누가 뭐래도 윈텔 제국은 이미 실리콘 밸리의 소비자들을 가장 안정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일반 소비자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상품들도 모두 이들에 의해 장악된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펜티엄 칩과 윈도 시리즈가 창출하는 이윤의 폭은 그들의 경쟁 기업들을 압도하게 될 것이며, 여기서 파생되는 순이익은 모두 제국의 선단식 확장 사업에 재투자될 것이다. 실제로, 윈텔 제국은 매년 3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를 차세대 상품의 연구비로 투자하고 있으며, 지난 5년간 인터넷과 네트워크 분야에 집중적으로 쏙아부은 200억 달러의 위력은 이제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대고 있다. 여기에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윈텔 제국의 연합 세력인 개미 군단의 지원을 감안한다면, 새 천년의 첫 10년간 이들이 창출해 낼 부가가치의 규모는 30개 엘리트 기업들이 지난 한 세기 동안 끌어올린 다우존스 1만 포인트의 업적을 초월할 것이라는 예측도 절대 실현 불가능한 가설만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실리콘 밸리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이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누가 감히 윈텔 제국을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Episode 40. 그래, 좋은 건 너희가 다 해라!

아마존사가 단순히 저렴한 가격에 책을 판매하는 대형 서점이 아니듯이, 마이크로소프트사 또한 더 이상 소프트웨어만을 판매하는 단순 제조업체가 아니다. 빌 게이츠는 윈도 95와 98이 파생시킨 천문학적 이윤을 기반으로 인터넷과 네트워크 시장에서 파생되는 대부분의 신종 사업 분야에 선두 내지는 간발의 차로 그 뒤를 쫓는 후발 주자의 위치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팽창을 주도하고 있다. 아무리 빌 게이츠가 앞으로 십 년 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력 상품이 윈도 NT, 오피스, 그리고 백오피스 분야로 압축될 것이라고 주장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좋든 싫든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상품은 물과 공기와 다름없는 의미로 일반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1999년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데스크톱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 패키지의 시장 점유율을 기반으로 네트워크(NT와 백오피스), 데이터베이스(MS SQL 서버), 개인과 기업 E-mail(핫메일과 익스체인지), 다목적 PDA 기기(윈도 CE), 교육과 게임 분야(엔카르타, 플라잇 시뮬레이터), 그리고 각종 온라인 게임, 인터넷 서버 컨텐츠,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MSN), CNN과 USA 투데이에 버금가는 시사 정보 사이트(MSNBC와 미디어 매트릭스), 여행 정보 사이트(익스피디어), 문화 생활 정보 사이트(사이드워크), 그리고 자동차 매매 정보 사이트(카포인트)까지 소프트웨어 산업이 침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여기에 웹TV, MSNBC, 그리고 텔레데식 프로젝트가 초고속 통신 시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게 되면, 지금보다 몇 배에 달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실리콘 밸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 시나리오가 바로 전세계 투자자들로 하여금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식을 실리콘 산업의 표준 잣대로 인정하게끔 만드는 근거이며, 나스닥 지수를 다우존스 공업 지수보다 훨씬 미래 지향적인 가치로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1세기의 자본은 나스닥이 빨아들인다. 현재 첨단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이 이끄는 나스닥의 원동력을 일단 그 효율성면에서 지난 100년간 다우존스를 1만 포인트로 이끈 30개의 우량 기업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21세기는 나스닥이 지배한다는 표현은 아마존사가 소설책을 판매하는 방식이 맥도널드사가 햄버거를 판매하는 방식보다 월등히 효율적이고 보다 풍부한 미래 가치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타당하다.

아마존사는 인터넷이라는 특수 공간을 활용해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도서(음반 및 비디오/DVD포함)를 판매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치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100개의 대형 서점 매장들이 연간 1,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야만 가능한 천문학적 금액이다. 또한, 아마존사가 인터넷 사이트와 도서 창고망을 구축하는데 지출한 비용은 5,000만 달러에 불과하지만,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재래식 서점이 전세계 50개 도시에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네트워크 매장을 구축하는데 요구되는 비용은 아마존사가 지출한 비용의 10배가 넘는 5억 달러 이상이다. 이것이 바로 아마존과 맥도널드의 차이이며, 나스닥과 다우존스의 차이이기도 하다. 현재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의 가격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여 합산한다 해도 아마존사의 주식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는, 이들이 앞으로 책만 판매하는 인터넷 대형 서점으로 이미지를 굳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효율성의 편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것이며, 냉장고나 햄버거와 같은 일반 상품을 전제로 발전해 온 기장 경제 이론은 이제 윈도와 펜티엄이 지배하는 디지털 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윈도 운영체제로 대변되는 디지털 상품의 가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생상과 유통 구조를 따르지 않으며, 시장 경제가 윈도와 빅 맥(맥도널드)이란 상품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윈텔 제국의 불패 신화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