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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yrus/Digging in the Dirt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Episode 21 - 25

Episode 21. 그들만의 리그

1985년 스티브 잡스를 떠나보낸 애플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살얼음판을 걷기 시작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갖고 추진한 매킨토시 컴퓨터는 스티브 잡스의 몰락과 함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고, 애플사의 자금 흐름에 열쇠를 쥔 애플 시리즈들은 더 이상 사용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MS사의 도스 운영체제와 인텔사의 X86 시리즈 프로세서가 엔드 유저들에게 부동의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80년대 중반, 애플사의 딜레마는 처참했다. 불과 5년 전 혜성처럼 나타나 PC 시장을 창출해낸 워즈니악의 애플 시리즈들은 더 이상 IBM PC 클론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구식 컴퓨터로 전락했고, 새로운 미래를 기약했던 매킨토시는 현실을 초월해 버린 황당한 컴퓨터로 인식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우리가 한다", "여기서 발명되지 않은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는 식의 독선적인 애플의 태도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실리콘 밸리에서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굳혀갔을 뿐이었다. 당시 애플을 일컫어 "얼터너티브"적인 회사라고 했는데, 사실 이 표현은 너무나 관대한 것이었다. 마우스와 풀다운 메뉴 방식의 환상적인 인터페이스는 아닐지라도, 실리콘 밸리의 PC 클론들은 대부분의 엔드 유저들을 만족시켰고, 또 도스를 축으로 불붙기 시작한 사무자동화(Office Automation)의 붐은 전문 PC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기 충분했다. 즉, 수직적으로는 메인프레임, 중형 워크스테이션, 엔드 유저 플랫폼의 PC 시장으로, 수평적으로는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 주변기기 시장으로 확산되면서 매우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먹이사슬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PC 시장의 대중화에 도화선이 된 미치 카포의 '로터스 1-2-3' 스프레드시트를 시작으로 운영체제와 랭귀지(베이식, 파스칼, 포트란, C 등) 시장은 MS사가 부동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SQL(Structured Query Language) 언어를 기반으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시장을 구축한 오라클(Oracle)사, 이더넷 테크놀로지의 장점을 살려 서버와 클라이언트 체계의 LAN을 보편화시킨 노벨(Novell)사, 네트워크간의 데이터 체계를 연결시키는 라우터(Router) 테크놀로지로 인터-네트워킹 시장을 탄생시킨 시스코(Cisco)사 그리고 포스트스크립트라 불리는 마법의 서체 언어로 전자출판 시장을 석권한 어도비(Adobe)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80년대 중반 PC 시장에서 독창성과 전문성을 주체로 내세운 '그들만의 리그'를 탄생시켜 버렸다. 또한 RISC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엔드 유저 플랫폼의 서버 역할을 담당한 유닉스(UNIX) 운영체제는 실리콘그래픽스사에게 비주얼 그래픽 시장을 새롭게 열어주었고, 할리우드 영화의 생동감 넘치는 특수효과를 가능케 했으며, 썬(SUN, Stanford University Network)사의 유닉스 기반 운영체제 솔라리스(Solaris)는 네트워크 시장에서 부동의 서버로 자리잡으면서 인터넷의 빅뱅으로 실리콘 밸리가 또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씨스코사와 함께 인터넷과 인트라넷 서버 네트웍스 시장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서 '그들만의 리그'는 완숙기에 접어드는 실리콘 밸리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즉, '윈텔과 안티-윈텔' 진영의 힘의 균형을 조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이들 리그의 파워가 나날이 커지게 됨에 따라, 스핀오프되는 테크놀로지 회사들의 가치가 종종 이들이 속해 있는 리그의 규모나 가능성, 팬(유저)들의 기대치에 의해 판가름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90년대 중반 인터넷의 빅뱅으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인터넷 관련 기업들의 실제 가치를 측정하는 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디지털 경제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 좀 더 직설적으로 다우 종합 주가 지수를 '꿈의 일만 포인트'로 끌어올리는 일등공신이 더 이상 생상력과 품질관리가 전부일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나아가 그러한 시각에서 투자자들을 '블루 칩' 시장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실리콘 밸리에서 한 회사가 '그들만의 리그'를 창출하려면, 소위 말하는 데이빗 리카도(David Ricardo)의 두 가지 재능이 있어야 한다. 데이빗 리카도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독학생이었지만, 천재적인 경제학 이론으로 물질 문명의 새로운 질서를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켜 백만장자가 된, 매우 보기 드문 학자 겸 사업가이다. 마샬(Marshall)과 케인스(Keynes)가 천재적인 경제학자였다면, 리카도는 천재적인 경제학자인 동시에 뛰어난 장사꾼이었다. 실리콘 밸리는 바로 이러한 데이빗 리카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곳이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천재적인 비전을 보여주어야 하고, 이 비전을 보편화시킬 수 있는 장사꾼 기질이 있어야 한다. 즉, 무어의 법칙에 의해 18개월을 주기로 모든 것이 두 배로 가속화되는 밸리의 변경에서, 벤처리스트들은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상업화시킬 수 있는 장사꾼 기질을 입증해야만 했다. 밥 노이스와 빌 게이츠는 이 두 요소를 모두 갖춘 경우이고, 쇼클리와 킬달은 두 요소 중 후자가 없었기에 '그들만의 리그'를 창출하지 못한 경우이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를 통해 형성된 '그들만의 리그'의 진정한 실체는 무에서 유를 창출해내는 독창성이라기 보다는 한번 플레이그라운드가 형성되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면역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그들만의 팬들'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바꿔 말 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훔쳐가도 시장을 훔쳐갈 수 없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들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정보 서비스라 불리는 세 가지 영역 중 하나를 택해 자신들이 실리콘 밸리의 '최고'이기보다는 '최다'임을 입증하는데 주력했다. 인텔과 MS는 각각 세계 최다의 마이크로프로세서(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산업체이며, 오라클은 세계 최다의 데이터베이스 정보 서비스 업체이다. 물론 최다가 결코 최고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리콘 밸리의 변경을 좌지우지한 대부분의 테크놀로지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윈텔 제국'이 아닌 '안티-윈텔' 진영의 끝없는 방황에서 사고 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기본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지는 법이고, 실리콘 밸리에서는 철저한 분업이 원칙이다. 밸리는 구조적으로 모든 방면에 뛰어난 팔방미인이 생존하기에는 너무나 치열한 먹이사슬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극단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정체성을 거부한다. 이 분업의 절대 원칙은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을 서로 연대시켜 연합체제를 형성시키거나, 그 반대로 이들을 경쟁시켜 대결구도로 이끌게 된다. 세분화된 분업체계를 무시하면 그 기업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밸리는 역사를 통해 증명해왔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한 가지 이상의 신분증을 지닐 수가 없다. 지난 20년간 밸리는 최고의 상품과 엔지니어들을 헌 신짝처럼 내팽개쳐 왔고, IBM의 'The PC'의 출현은 독창성과 전문성을 방어막으로 내세운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 것이 또 다른 아마겟돈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는 교훈을 밸리에 보여주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나 혁명을 통해 모든 것이 새로운 질서를 잡아갈 무렵이면, 어느 곳에도 융화될 수 없는 조직과 인물이 등장하곤 했다. '그들만의 리그'란 대세가 실리콘 밸리의 모든 영역을 파티션해 나가는 80년대 중반 모든 컴퓨터 회사들이 이 새로운 흐름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올라간 대표적인 기업은 빅 블루 IBM과 영원한 밸리의 반항아 애플사였다. 특히 8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이어진 애플사의 무모한 '나 홀로 프로젝트'들은 '자멸'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90년대 초반 '그들만의 리그'가 독보적인 네티즌 제국으로 승화될 무렵 자신의 초라한 실체를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Episode 22. 코페르니쿠스의 항해

80년대 실리콘 밸리의 주인공은 단연 애플사다. 80년대 초반 퍼스널 컴퓨터가 태동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완숙단계에 접어든 90년대 초반까지 애플은 불행하게도 밸리의 모든 대형 사고들을 대변해왔다. 실리콘 밸리에서 R&D는 보험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다. IBM, HP, 인텔과 같이 각자의 분야에서 선두 자리에 있는 기업들은 매년 순이익을 기준으로 일정한 자금을 할당하여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하는 치원에서 R&D란 이름의 보험을 들고 있다. AT&T사의 벨연구소와 루센트테크놀로지 연구소, IBM사의 순수과학연구소 그리고 제록스사의 파크연구소 등은, 이 거대 공룡 조직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보험의 임무를 띄고 천문학적인 자금을 소모하는 대표적인 소비집단이다.

실리콘 밸리의 '볼륨 원칙'은 이들 대표기업들에게 지속적으로 밸리의 시장 규모, 즉 볼륨을 넓히지 못하면 수평선 끝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는 '코페르니쿠스의 항해'를 묵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IBM사의 SQL 언어, 벨연구소의 유닉스 운영체제, 파크연구소의 GUI, 이더넷, 그리고 포스트스크립트 언어 등은 모두 이들 공룡 집단들이 디지털 시장을 팽창시키기 위해 보험의 의미로 추진된 프로젝트들이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없었다면 이들의 항해는 벌써 벼랑 끝으로 추락해버렸을 것이다. 물론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미래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최상의 대비책은 예상 가능한 모든 테크놀로지들에 대한 프로토 타입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젝트들의 프로토 타입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요구하며, 따라서 공룡 기업들의 자금력이 아니면 도저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신생기업들에게는 단지 '꿈의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이다. 애플사의 무모함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밸리의 미래를 기약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애플사는 이들 공룡 기업들에 의해 운항되던 '코페르니쿠스의 항해'의 선봉장 역할을 자청하고 만다. "여기까지는 안전하니 나를 따르라!"라는 한 마디가 그렇게 중요했던가! 진정 이보다 더 무모한 도전은 없었다. 판돈만 수천 억 달러에 달하는 지존들의 세력 싸움에 '넘버3'가 낄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1985년 애플사를 이끌게 된 존 스컬리와 장 루이 가세는 기교파 장사꾼들이었을 뿐 결코 엔지니어는 아니었으며, 이들의 방황은 '포스트 스티브 시대'의 애플사를 하루 아침에 비전을 상실한 회사로 전락시켜버렸다. 데이빗 리카도의 두 가지 능력을 서로 반쪽씩 소유했던 '두 명의 스티브'의 동반 하차가 애플사의 몰락을 예고하긴 했지만, 그 누구도 이와 같은 무모한 도전에 의해 애플이 추락하는 시나리오는 예상치 못했다. 펩시맨 존 스컬리는 불행하게도 실리콘 밸리와 디트로이트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컬리는 1985년부터 뉴턴(Newton) PDA 단말기의 실패로 애플사에서 해고되는 1993년도까지 약 8년 동안, 차라리 세상의 빛을 보지 않는 편이 나았을 수십 개의 '도루묵 프로젝트'들에 1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허공에 뿌려진 이 천문학적인 투자액은 기존의 공룡 기업들이 따로 보험료의 의미로 떼어놓은 것이 아니라 애플사의 생계비와도 같은 것이었으며, 이 부담은 결국 죄 없는 매킨토시 사용자들에게 전가되면서 매킨토시는 소생 불가능한 치명타를 받게 된다.

존 스컬리는 애플사의 사령관으로 부임하자마자 R&D 비용을 두 배로 늘리기 시작한다. 1985년 1억 달러를 약간 웃돌던 애플사의 R&D 비용은 2년만에 2억 달러를 넘어섰고, 애플사의 실낱같은 재기 가능성에 쇄기를 박게되는 1989년에는 자그마치 4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매킨토시에 쏟아붓게 된다. 하지만 애플사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콩을 심을 때 팥을 심고 있었다. 잡스의 리사와 매킨토시 프로젝트가 애플사의 '나 홀로 프로젝트'의 시발점이었다면, 1986년 추진된 '아쿠아리우스(Aquarius)'라는 코드명의 프로젝트는 앞으로 8년간 지속된 스컬리의 고통스러운 오디세이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즉, 이 사건은 "밸리의 어떤 회사도 애플사보다 무모할 수는 없다"는 메세지를 만방에 알리기에 충분했다.

코드명 아쿠아리우스는 모토롤라의 진척없는 68000 시리즈 프로세서에 대한 염증과 날로 사세를 확장해가고 있는 인텔사의 독주에 위협을 느낀 애플사의 작은 반란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당시,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CPU 생산업체 중 하나였던 모토롤라는 GUI 운영체제의 복합 그래픽을 원활하게 운용하기엔 역부족인 프로세서를 매킨토시에 공급해왔고, 매킨토시가 실질적으로 사용자들에게 강력한 컴퓨터로 인식되기 위한 최저의 연산 속도를 갖춘 68040 프로세서는 모토롤라의 내부 사정으로 그 출시 시기가 기약없이 늦춰진 상태였다. 결국 스컬리는 "모든 것은 우리가 한다"라는 특유의 배짱으로 '아쿠아리우스'라고 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탄생시키기 위한 물밑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아쿠아리우스 프로젝트는 기존 인텔사와 모토롤라사 제한적인 CPU 생산방식인 CISC 방식에서 무한대의 가능성을 보유한 RISC 방식의 프로세서로 전환을 검토했으며, 더 나아가 한 대의 매킨토시에 4개의 CPU를 복합적으로 포함시키는 멀티 CPU 프로세서 체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스컬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컴퓨터를 만들 작정이었던가? 그 당시 퍼스널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에 RISC란 개념은 아직까지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고, 멀티 CPU 프로세서는 슈퍼컴퓨터의 대명사인 크레이(Cray) 컴퓨터에만 제한적으로 시도된 메인프레임 테크놀로지가 아니었던가! 실리콘 밸리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적(敵)을 갖고 있었던 애플사가 지난 10년간 PC 혁명의 동지로서 한 배를 탔던 모토롤라사에 도전장을 던진 이 사건은 스컬리가 이끄는 애플사의 오디세이가 얼마나 무모한 항해였던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동시에 GUI 운영체제의 보편화라는 실리콘 밸리의 절대절명의 과제는 앤디 그루브와 빌 게이츠가 이끄는 '윈텔 제국'에 그 명분을 넘겨주게 된다.


Episode 23. 애플사의 크라잉 게임-이보다 더 무모할 순 없다.

아쿠아리우스 프로젝트로 인해 애플사에게 더 이상 연합세력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그들의 전선은 이제 동서남북의 전방으로 확장돼 버렸다. 북부전선은 모토롤라사와 인텔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 선전포고를 내린 상태였고, 남부전선은 앞으로 처절하게 펼쳐질 MS사와의 운영체제 전투에 대비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벌써부터 전세가 꺾인 동부전선은 IBM PC 클론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서부전선은 HP사의 레이저 프린터와 어도비사의 서체 분쟁으로 소모적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애플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GUI 테크놀로지 운영체제는 MS사와 법정싸움에 휘말려 지루한 소모전을 치러야만 했고, PC 시장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편시키게 될 객체지향 운영체제를 겨냥한 '핑크(Pink)' 프로젝트, 매킨토시 시스템에 음성 인식 기능을 추가시키는 '레드(Red)' 프로젝트, 오늘날까지 가장 우수한 GUI 운영체제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매킨토시 '시스템 7 & 8'의 모체가 될 '블루(Blue)' 프로젝트, 마이크로프로세서도 없이 RISC 체제의 차세대 운영체제를 추진한 '재규어(Jaguar)' 프로젝트, 그리고 펩시맨 스컬리를 벼랑으로 몰아간 차세대 PDA 기기를 꿈꾸던 '뉴턴(Newton)' 프로젝트는 시간이 흐를수록 출발 당시보다 서너 배 이상 몸통이 불어나 애플사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아쿠아리우스 프로젝트는 3년간의 준비작업에도 불구하고 인텔사와 모토롤라사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피부로 느끼면서, 애플사는 천문학적인 자금만 낭비한채 1989년 '도루묵 프로젝트' 1호로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또 스티브 잡스의 NeXT 운영체제와 함께 객체지향 프로젝트의 원조로 불리는 '핑크' 프로젝트는 서너 명의 엔지니어로 시작해 결국에는 재규어 프로젝트를 통합하면서 수백 명의 엔지니어들이 붙게 되어 애플사 최대의 프로젝트인 '파워PC'란 이름으로 상품화되지만, 애플사는 이것을 계기로 인텔 프로세서와의 영원한 결별을 알리는 동시에 한때 천적(天敵)으로 간주됐던 IBM사와 실익없는 동맹관계를 형성하면서 밥 노이스와 빌 게이츠가 이끄는 '윈텔 제국'을 수면 위로 떠올리게 된다.

애플사의 유일한 효자 프로젝트였던 '블루'가 이끌어가는 '시스템 7'의 보급형 매킨토시 상품들인 클래식, LC, Si, Ci 그리고 Fx 기종들은 나머지 프로젝트들의 도루묵화에 의해 야기된 천문학적인 손실을 떠안으며 최후의 마지노선을 긋게 되지만, 윈텔 진영의 386 프로세서와 MS사의 '윈도 3.0'의 화력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탈진된 상태였다. 1990년 윈텔 진영의 PC 시장 점유율을 90퍼센트를 웃돌았으며, 애플사의 시스템은 더 이상 PC 시장의 유일한 GUI 운영체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1989년 매킨토시 최초의 노트북 모델로 시장에 선보였던 매킨토시 포터블(Mac Portable)의 참패는 장 루이 가세를 애플호에서 이탈시켜 버렸으며, PDA라 불리는 신개념의 초소형 컴퓨터로 매킨토시에 버금하는 PC 혁명을 꿈꿨던 뉴턴마저도 사용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면서 존 스컬리의 무모한 오디세이는 1993년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애플사와 '안티-윈텔' 진영의 궁극적인 몰락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아쿠아리우스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아쿠아리우스가 일단 성공하면 애플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를 모두 커버하는 완벽한 회사가 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실패로 끝나게 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크라잉 게임'을 요구했다. 닐 조단의 역작 <크라잉 게임>에 나오는 '전갈과 개구리'의 일화처럼, 애플사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갈의 길을 답습하고 있었다. 개구리의 등에 업혀 물길을 지나는 과정에서 전갈은 난데없이 개구리의 등에 독침을 쏘게 된다. 냇물 한가운데서 독침을 맞은 개구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왜, 하필이면 여기서....."라며 반문하지만 물 속으로 함께 침몰하던 전갈은 개구리에게 이렇게 답변한다. "이건 내 본능이야! 나도 어쩔 수 없었단다."

애플사는 이렇게 PC 혁명의 혈맹이었던 모토롤라사의 등에 독침을 쏘면서 무모하게 침몰해갔다.

돌이켜 보건데, 애플사가 80년대에 추진한 테크놀로지들은 실로 대단한 것들이었다. PC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매킨토시의 GUI 테크놀로지를 시작으로 멀티태스킹과 객체지향 운영체제, 포스트스크립트 언어, RISC 프로세서 그리고 뉴턴으로 대변되는 PDA 기기는 지난 10년간 실리콘 밸리가 궁극적으로 추진하게 될 모든 분양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애플사의 이러한 실험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현주소는 지금보다 훨씬 퇴보된 위치에서 공전을 거듭하고 있었을 것이며, 적어도 애플사가 이룩한 기술적인 업적은 그 누구도 평가절하할 수 없는 실리콘 밸리의 역사인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애플사의 이 모든 공로에 아무리 후한 점수를 준다고 하더라도, 80년대 중반과 후반에 걸쳐 추진된 애플사의 프로젝트들은 실리를 무시함은 물론 명분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채 대부분 도루묵 프로젝트들로 전락되면서, 최악의 결과인 윈텔 제국의 독과점을 앞당기는 일등공신이 되어버렸다. '안티-윈텔 진영'의 비극은 윈도 3.0 출시를 기점으로 무너져버린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아직까지 애플사라는 회사가 윈텔 제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는 사실이다.

1995년 윈도 95라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쿠퍼티노의 심장부인 애플타운의 하늘을 뒤덮을 때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Episode 24. 수면 위로 떠오른 윈텔 제국

1990년 윈도 3.0의 출시는 애플사는 물론이고 빌 게이츠와 비밀리에 'OS/2'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추진하던 IBM사에게도 일격을 가하는 윈텔 제국의 기습공격이었으며, 윈도 3.0의 성공적인 출하는 빌 게이츠와 앤디 그루브가 이끄는 윈텔 제국이 PC 시장의 모든 영역을 좌지우지하는 부동의 실권자임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계기로 되었다. 결과적으로 빌 게이츠가 MS사에서 추진한 운영체제 프로젝트의 상품화 과정에서 빅 블루 IBM사의 재가를 얻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행한 첫 번째 프로젝트인 '윈도 3.0'의 기습 출시는 애플사에 그로기 펀치를 날리는 동시에, 지금까지 자신의 뒤를 돌봐준 IBM사를 안티-윈텔 진영으로 합류시키는 쿠데타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때부터 언론들은 윈텔이란 용어를 방송매체와 신문지상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PC 시장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다.

윈도 3.0은 출시 첫 주부터 일반 사용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매킨토시 시스템의 아류작이라는 각종 언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데뷔 첫 해인 1990년 한 해 동안 일반 PC 사용자들을 상대로 3백만 개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고, 결국 PC 클론 시장에서 값비싼 매킨토시가 설 땅은 없어졌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콤비 플레이는 진정 프로들의 작품이었다. 윈도 3.0과 함께 출시된 인텔사의 386 프로세서는 사용자들의 체감 속도로 보자면 적어도 기존의 286 프로세서보다 2배 이상 빠른 스피드를 뿜어냈으며, 386 프로세서는 윈도 3.0과 환상궁합이 되어 PC 시장을 거침없이 장악해 나갔다. 1992년의 윈도 3.1과 486 프로세서, 1995년도의 윈도 95와 펜티엄 프로세서의 콤비 플레이를 통해 적어도 무어의 법칙이 그 효력을 다하는 순간까지 이들의 번영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한편 1990년 윈도 3.0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무렵,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라는 무명의 영국 프로그래머에 의해 개발된 HTML(Hyper Text Markup Language)이라 불리는 새로운 언어 체계는 아무도 모르게 실리콘 밸리의 지각 변동을 암시하는 씨앗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여기에 우선 순위를 두고 프로젝트를 펼쳐나가는 실리콘 밸리의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윈텔과 안티-윈텔 진영은 숨가쁘게 치닫고 있는 GUI 운영체제의 싸움에 모든 전력을 소비하고 있었을 뿐, 버너스 리의 HTML과 미 연방정부가 지난 20년간 관군(官軍)에게만 사용권을 부여한 인터넷의 상용화에 대해서는 대다수 밸리 기업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윈텔과 안티-윈텔 진영 모두를 혼돈의 세계로 이끄는 WWW 빅뱅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기서 빌 게이츠는 '모름지기 우선 순위를 정하라!'라는 실리콘 밸리의 새로운 원칙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깨닫게 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창헙 후 지금까지 이어온 연승행진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대들이 무엇을 추진하던 간에 먼저 우선 순위를 정하라!" 스티븐 코비(Steven Covey)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나오는 '우선 순위를 정하라!'라는 전략적 사고는 진정 실리콘 밸리의 모든 기업들을 향한 외침이었다. 실리콘 밸리는 패자부활전을 용납하지 않는다. 잘잘못을 가리지도 않고, 운이었는지 실력이었는지도 묻지 않는다. 다만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뿐이다.

빌 게이츠가 윈도 95의 성공적인 출시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모든 프로젝트들을 백지화시키면서 인터넷 웹 브라우저의 성공적인 출시에 사활을 건 것도 바로 '우선 순위'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항아리에 주먹만한 자갈, 구슬만한 조약돌, 모래 그리고 물을 남김없이 모두 담으려 한다면 어떤 순서로 담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항아리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자갈, 조약돌, 모래, 물의 순으로 담는 방법 뿐이며, 이 순위를 무시하고 물이나 모래를 먼저 담게 되면 항아리는 이내 넘쳐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실리콘 밸리에서 이 우선 순위를 완벽하게 적용시켜 성공한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완벽하게 우선 순위를 무시한 기업은 애플사였으며, 윈텔 제국은 대표하는 마이크로소프트사도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사이버 스페이스를 정점으로 밸리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90년대 중반 우선 순위를 혼동하는 절대절명의 실수를 범했다.

실리콘 밸리에서 선택은 소금과도 같다. 언제나 추가할 수 있지만, 녹아버린 후에는 결코 덜어낼 수 없다. 그 다음 '선택의 여지'란 없다.


Episode 25. 금세기 최고의 상품, 윈도 95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탄생한 윌리엄 쇼클리의 트랜지스터를 시작으로 무어의 법칙에 준하여 앞만 달려온 실리콘 밸리의 하이-테크놀로지들은 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윈텔'이라는 콤비 플레이로 PC 역사상 최고의 작품을 사용자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뛰어난 예술가는 도용하며,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표현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빌 게이츠의 윈도 95는 반세기 실리콘 밸리의 역사가 창출해 온 모든 테크놀로지의 결정체로서, 이 상품의 원천에 대한 의혹과 성능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PC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윈도 95와 펜티엄 프로세서는 진정 금세기 최고의 히트 상품 중의 하나이다. 지난 4년간 이 두 상품의 콤비 플레이는 헨리 포드의 자동차만큼이나 세상을 변모시켰고,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이상으로 세상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파괴시켰으며, 리오 배켈랜드(Leo Baekeland)의 플라스틱만큼이나 보통 사람들의 일상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고,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의 천체 망원경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보다 넓은 곳을 보여주었다. 이 두 상품의 콤비 플레이로 새 천년을 이끌어갈 '디지털 경제'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으며, 이들의 후작(後作)들이 엮어낼 시나리오들을 상상해 본다면 금세기 최고의 상품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찬일 수 없다. 도대체 '윈도'가 뭐기에?

90년대 중반 MS사가 PC 시장에 내놓은 '윈도'와 '오피스' 시리즈 상품들은 일반 사용자들이 매일 접할 수 있는 일반 상품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여러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물론 소프트웨어란 상품이 지닌 '길들여짐'이란 특수성과 물과 공기처럼 단시일 내에 세상의 어느 곳에도 다다를 수 있는 변칙적이면서 파격적인 유통구조는 컴퓨터 산업이 패상시킨 독특한 장점이지만, 빌 게이츠는 그 누구도 쉽게 해내기 힘든 '카운트다운'이라는 마니아적 요소까지 겸비한 '꿈의 상품'을 지난 10년간 PC 시장에 뿌려왔다. 한 상품이 소비자들에게 카운트다운이라는 진풍경을 연출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이러한 해프닝은 판매자 쪽에서 의도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상업적 연출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극히 강박관념적인 신드롬으로서,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발생한 오묘한 관계에서 서서히 파생되는 매우 특이한 마케팅 전략이다.

빌 게이츠가 세상에 뿌리는 상품들은 일단 소비자들에게 상업적인 가치를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다. 절대적인 소유욕을 유발시키는 마력이 함축되어 있는 이들 상품에 대한 MS사의 마케팅 전략은, 품질과 유통구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마니아층을 넓히기 위한 전략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다.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스티커를 부착하는 컴퓨터 제조업체들에게 일정 금액의 혜택을 제공하는 인텔사의 자체 홍보 캠페인과 MS사가 윈도 95의 출시에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홍보 비용은 이들의 전략적 마케팅의 우선 순위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카운트다운을 불러일으키는 상품의 기본적인 공통점은 이들이 지닌 상업적 가치보다는 그 상품이 지닌 '혁명성' 내지는 '획기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틀스의 마나아들로부터 <스타 워즈>의 마니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하루 이틀 늦게 이 상품을 접한다 한들 전혀 새로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모든 일상을 접고 침낭과 베개를 챙겨 기꺼이 줄서기를 하는 광경은 실로 글로써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모든 마니아적인 상품들이 똑같은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빌 게이츠의 윈도 95와 조지 루카스의 <스타 워즈>란 상품은 서로 마니아적 요소를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지만, <]스타 워즈>는 단면적인 상품으로 소비자들에게 일반 소비되면 그것으로 달아오른 소비성이 일단락되는 반면, 빌 게이츠의 윈도 95는 무한대의 응용성을 교두보로 사용자들에게 지속적인 소비를 부추기는 복합적인 상품이라는데 차이점이 있다. 이 차이점은 조지 루카스에게 할리우드의 영화감독들 중 최고의 부를 과시하는 제한적인 인물로 한계선을 긋는 반면, 빌 게이츠에게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부를 누리는 인물로 급부상할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